저작권과 관련된 논의가 분분한 것은 주로 음악과 영화 분야지만, 시인들도 종종 저작권이 법적으로 강화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창작자의 입장이라 해도 썩 좋은 쪽으로의 체감은 아니다. 재수록료 명목으로 통장에 입금되는 금액이 아주 약간 늘긴 했지만 어차피 푼돈이다. 대신 구속력은 분명해졌다. 내가 쓴 시라도 내 시집을 낸 출판사의 동의가 있어야 다른 지면에 실을 수 있다. 오래 전에 죽은 시인의 시 한 편을 어딘가에 수록하려면 유족의 동의서를 얻어야 한다. 흔쾌히 수락을 받는 경우에도 절차는 확실히 복잡해졌고, 가끔은 예기치 않은 난관에 부딪히기도 한다. 창작자의 노고에 대한 정당한 대가란 어떤 것일까. 내가 쓰고 만든 것을, 누군가가 즐겨준다는 기쁨. 아마 그것이 가장 클 것이다. 유통경로의 까다로움과 복잡함은 그 기쁨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또 "읽어주고 인용해주는 걸 감사히 여겨라"라는 식의 반응을 접하거나 "좋아서 하는 일에 왜 돈을 바라는 거니?"하는 핀잔을 들으면 몹시 서운하기도 하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고, 좋아서 하는 일이라 해도 먹고는 살아야 한다. 또 창작물이 누군가에게 향유될 수 있도록 장(場)을 열어준 매개자의 노고까지 '기쁨'으로 보상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다. 창작자와 향유자가 가장 행복하게 만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일지,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 사이에서 나는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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