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대부분은 (재영)동포들 아닐까요?"
지난 11일 영국 런던으로 향하기 전 인천공항에서 만난 강우석 감독은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동행한 배우 설경구도 다르지 않았다. 유럽에서 한국영화를 상영하면 한국인들이 대부분의 좌석을 채우리란 선입견은 누구나 가질만하다.
그러나 12일(이하 현지시간) '공공의 적'과 14일 '전설의 주먹' 상영이 각각 끝난 뒤 강 감독의 표정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차분했던 얼굴 위로 흥분이 깃들었다. 영국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와 질문 공세는 충무로를 쥐락펴락해온 제작자 겸 감독을 들뜨게 할만했다.
지난 7일 막을 올린 제8회 런던한국영화제(주관 주영한국문화원ㆍ집행위원장 전혜정)가 15일 폐막작 '고령화 가족'(감독 송해성) 상영을 끝으로 런던 일정을 모두 마쳤다. 이 영화제는 22일까지 옥스퍼드와 브래드포드, 세인트앤드류스 등 지방 도시로 이어진다. 올해 런던한국영화제는 개막작 '숨바꼭질'(감독 허정)과 '감기'(감독 김성수)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감독 이재용) 등 충무로 최신 상업영화 등 43편의 국내 영화들을 소개했다.
런던한국영화제는 한국영화의 빠른 세계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2006년 관객 1,000명으로 출발한 이 영화제는 지난해 관객 수를 5,000명으로 늘렸다. 지난해 폐막식엔 브루스 윌리스와 존 말코비치, 헬렌 미렌 등 일급 배우들이 찾아와 화제를 모았다. 올해는 BBC가 '런던한국영화제가 (한국)흥행작들을 런던에 가져오다'라는 제목으로 영화제 개막을 예고하며 관심을 나타냈다. 올해 런던한국영화제를 찾은 관객 수는 지난해와 엇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런던한국영화제의 성장은 한국 상업영화에 대한 영국 관객들의 호감에 바탕을 두고 있다. K팝과 한국 드라마에 매료된 영국인들이 한국의 주류 상업영화를 찾기 시작하면서 영화제도 조명을 받는 모양새다. 올해 영화제 기간 중 영국 관객들은 한국 감독들에게 "한국영화의 질이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영화의 제작기간은 보통 어느 정도 되느냐" 등의 질문을 던지며 충무로 주류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표시했다.
한국 등 아시아 상업영화는 그 동안 유럽 극장가에서 찬밥 신세였던 것이 사실이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영화강국들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세계 영화산업의 헤게모니를 할리우드에 넘겨줘 버렸고, 전후 유럽영화계의 자존심은 칸과 베를린 베니스 등 유명 영화제가 지탱해왔다.
그런데 이런 영화제를 통해 조명 받는 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의 영화들은 할리우드에 맞서 유럽영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걸 맞는 예술성 강한 작품들이었다. 임권택 이창동 김기덕 홍상수 박찬욱 등 작가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 감독들이 유럽에서 주목 받고, 충무로 주류영화가 철저히 비주류 대접을 받아온 이유다.
유럽에서의 한국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은 최근 파리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10월29일~11월5일 열린 제8회 파리한국영화제엔 1만명 가까운 관객이 몰렸다. 2006년 제1회 때 이 영화제를 찾은 관객은 500명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국 상업영화의 유럽 시장 보급은 이제 시작일뿐 넘어야 할 문턱이 높다. 관심이 늘어났다고는 해도 지난해 영국에서 개봉한 한국영화는 고작 5편에 불과하다. 알렉스 스톨즈 영국영화협회(BFI) 배급담당 책임자는 "('올드보이' 등) 아시아영화를 주로 수입배급하던 (영국의)타탄필름이 최근 파산하면서 한국영화 개봉에 어려움이 있다"며 "아시아영화만을 위한 전문적인 브랜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런던=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