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블베이스의 편견을 바꾼 아들 성민제카르멘 판타지·치고이네르바이젠…아버지도 완주 못한 힘든 곡들악기 크기 바꿔가며 중학교때 마스터16세에 슈테르너 콩쿠르 최연소 우승피치카토 통념깨고 바이올린 음색까지"뉴욕필 수석 주자의 꿈, 머지않아"● 美 콜번음대 입학 앞둔 딸 미경오빠 뒤이어 슈테르너 콩쿠르 우승서울시향의 '찾아가는 음악회' 등아버지·오빠와 한 무대 '진기록'도
클래식 음반의 전통적 명가인 도이취 그라모폰에서 낸 앨범 'Flight Of The Double B'에서 그는 처음부터 맹렬한 공세를 펼치기로 작정했다. 기교파들이 자신의 기량을 과시하기 위해 즐겨 연주하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Flight Of The Bumble Bee)'를 내세운 것이다. 엄청난 속주로 막대한 분량의 음표가 1분 21초 동안 더블베이스(콘트라베이스)에서 무지막지하게 쏟아져 나오더니 막스 브루흐의 장중한 곡 'Kol Nidrei'에서는 수도원의 정적에나 어울릴 법한 장중한 음이 듣는 이를 압도한다.
"기절할 정도다."2009년도 독일에서 진행된 녹음의 현장을 지켜 본 사람들의, 다소는 호들갑스런 현지의 반응에는 개리 카 이후로는 별다른 스타가 나타나지 않던 콘트라베이스, 아니 클래식 일반의 기대가 절실히 녹아 들어 있다.
성민제(24).
일반 한국 사람이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6년 슈테르너 콩쿠르에서 16세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을 하면서부터였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절대 모르는 곡" 이라며 주최측에서 장담하던 작품이었다. 폴란드의 낭만주의 작곡가 미?r, 독일의 20세기 작곡가 한스 프리바 등 일반에게 친숙하지 않은 곡까지 능히 소화해 냈으니 주최측이 귀를 의심할 만도 했다. 바로크와 고전주의 시대 활의 중간 형태인 슈테르너 시대의 활을 사용한 것도 점수를 땄다.
한국인들이 사족을 못 쓰는 세계 1등이었으나 무덤덤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처럼 낯익은 악기가 아니라는 사실에다, 더블베이스라면 뭣보다 재즈 악기라는 오해가 겹친 탓도 있다."더블베이스라면 일단 피치카토(손가락으로 뜯는 주법)로만 하는 악기라는 통념이 너무 강해요. 흑인이 해야 제격으로 항상 드럼 옆에 있는 악기로 착각들 하는 거죠."그 같은 통념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지난 6월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발매된 앨범 'Sung Minje'는 보다 자유스럽다.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씨의 편안한 반주에 그는 스스로 연주를 즐기듯 유장한 음을 선사한다(Universal).
나라 안팎으로 펼치는 활약이 인상적이다. 그것은 뭣보다 185cm나 되는 키로 오케스트라의 맨 뒷줄에서 최저음을 내는, 존재감 없는 악기로 여겨지기 십상인 더블베이스에 대한 편견부터 떨쳐내고 싶어서다. "키 185cm 인 더블베이스의 특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곡 선택부터 중요해요. 첼로보다 한 옥타브 낮아 소리가 밑으로 깔리거든요." 악보상 표기된 음보다 한 옥타브 낮게 연주하지만 실제로는 바이올린의 음색까지 낸다. 특히 정상 음역 밖의 고음을 내는 하모닉스는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쿠셰비츠키를 중학교 1학년에 다니던 열 세살 때, 한 교회 오케스라와의 협연으로 치러냈어요."같은 더블베이스 주자인 아버지 성영석(53ㆍ서울시향)씨가 2000년의 일을 다시 떠올렸다. 당시 국내에는 클래식 더블베이스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이듬해 더블베이스 주자로는 역시 최초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교육 사업인 금호영재에 선발되면서 클래식계 내부에서 위치를 다져나갔다.
성민제의 예술적 성취를 실감나게 인식하려면 더블베이스의 거장 개리 카의 경우를 원용하는 게 빠르다. 카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인 1983년, 연주 불가로 인식돼 오던 쿠셰비츠키의 곡을 초연했다. 같은 악기를 다루던 영석씨에게 그 일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아들이 이번에 그 곡을 갖고 나간 것은 아직도 세계의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제왕적 존재인 카의 수준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요량도 한몫 했다.
여동생 미경(21)씨까지 합치면 이 가족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더블베이스 일가가 되는 셈이다. 미국 콜번 음대로부터 입학 초청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입학 준비 중인 미경씨 역시 슈테르너 콩쿠르에서 민제씨보다 4년 늦게 우승했다. 남매의 한 콩쿨 입상 또한 기록이다.
피아니스트이자 합창 전문 반주자인 어머니 최민자(51)씨를 합치면 이들은 영락없는 음악 가족이다. "부모가 모두 음악 하는 집안 덕분에 귀가 일찍 발달했다. 음정, 리듬감이 어려서부터 몸에 배었나 봐요." 영석씨는 선율에 대한 기억력이 남달랐던 아들에게 자신이 연주하던 콘트라베이스를 10살 때 가르쳐 보았다. 곧잘 따라 했다. 학교 파한 뒤 매일 오후 5시부터 서너 시간 동안 인근 상가의 지하에 마련한 개인 연습실은 별난 부자의 레슨 수업장으로 변했다. "시장에서 군것질 거리를 사 와 먹으며 연습을 즐겨 했죠."6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우던 아들은 10살이 되자 아버지의 악기에 부쩍 호기심을 가졌다.
그러나 겨우 10살이라, 우선 체격에 맞는 콘트라베이스 구하기부터 만만찮았다. 부친은 안면 있던 악기 공방에 가서 "값은 얼마든 줄 테니 소형 콘트라베이스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절반 사이즈의 콘트라베이스가 한국 최초로 만들어 진 것. 왜 그런 호들갑을 떨었을까. "콘트라베이스는 첼로를 부풀린 것이 아니에요. 현의 생김새와 구조는 물론 주법까지 달라요. 특히 중지는 아예 안 쓰죠."
감싸 안고 연주하는 특성상 민제씨는 커가면서 악기를 5차례나 바꿨다. 10세 때의 국산 악기는 12세(초등 6)가 되자 악기상에 주문한 독일 악기로, 쑥쑥 커가던 중학교 때는 2학년과 3학년 잇달아 교체해야 했다. "당시 민제는 '카르멘 판타지'와 '찌고이네르바이젠' 등 바이올린으로도 하기 힘든 곡을 마스터 한 상태였어요. 나도 완주해 보지 않은 난곡이라 연구해 가며 가르쳤죠."이후 아버지는 민제 씨의 교육에서 손 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중 악기는 현재의 성인용으로 바뀌었다.
민제씨의 예사롭지 않은 내력은 집안의 내력과 필연적으로 겹친다. 고교 2학년 때부터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했던 아버지는 당시 서울시향 오보에 수석이었던 형이 "까다로운 오보에보다는 콘트라베이스가 훨씬 발전 가능성이 큰 악기"라며 적극 권해 이 악기의 길로 들어 선 것.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동생을 가르쳤다. 내달 미국 콜번 대학 입학 예정인 미경씨까지 합쳐 온 가족이 한 무대에 선 적도 있다. 2008년 금호아트홀에서의'Loving Family'에서 엘가의 '사랑의 인사'와 영화 주제곡 등 귀에 익은 선율로 객석을 즐겁게 했다. 그 밖에 서울시향이 주최하는 '찾아가는 음악회' 무대에서도 이들은 함께 했다. 재즈가 아닌 클래식 더블베이스 3대, 그것도 일가족이 하는 경우란 세계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다. 이들은 "기회 닿는 대로 많이 서고 싶다"지만 현실이 만만치 않다
현재 민제씨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군대 문제. "보다 심도 있는 공부로 진입할 시기와 공교롭게도 맞물려 있어요." 아버지의 우려는 지금이 본격적으로 자신 알리기에 나서야 할 때이자 방대한 시장인 미국 진출을 코앞에 둔 시점이어서 설득력을 지닌다. "크게 보면 개리 카로 통합된 콘트라베이스 시장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다는 의미죠. 구체적으로는 평소 동경해 왔던 뉴욕필하모니의 수석 콘트라베이스 주자에 다가서자는 거예요." 모든 일이 잘 해결돼 조만간 뉴욕행이 성사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는 혼자가 아니다. 콩쿨에서의 쾌거는 음악 교육 현장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초등학생의 베이스 희망자들이 급증했다는 소식이 그 중 하나다. 특히 선화나 예원 등 예술중ㆍ고생의 경우 지원자가 30여명을 헤아릴 정도. 중학 시절 통틀어 유일한 더블베이스 지망생이었던 성민제는 그래서 외롭지 않다. 현재 유럽에는 더블베이스를 공부하러 간 한국의 음악도가 100여인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제 2의 성민제'를 꿈꾸는 것은 당연하다.
자매의 무대는 한국 클래식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놓을 것이다. 바이올린이 울고 갈 화려함의 오빠, 진중함의 여동생이 빚어 올릴 조화의 순간을 기대하는 건 단지 부모만은 아닐 것이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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