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500억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비과세 보험상품으로 관리해 온 인쇄업체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자 보험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복지정책을 위한 세원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정부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저축성 보험의 비과세 혜택 폐지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1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장기 저축성 보험의 경우 5년 이상 불입하고 10년 동안 해지 않고 유지하면 차익에 대한 이자소득세를 면제 받는다. 서민들의 노후자금 마련을 위한 장기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 면세 혜택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총 한도가 정해져 있는 은행권의 비과세나 세금우대 저축과 달리 무제한 비과세 혜택을 받기 때문에 원래 취지와 달리 고액 자산가들의 ‘세(稅)테크’ 용도로 활용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미 2억원 이상 금액을 일시납 형태로 맡기는 즉시연금은 서민들의 장기 저축 장려라는 취지에 어긋나는 점이 인정돼, 2억원 초과분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없앴다. 하지만 아직도 월 불입 형태의 저축성 보험에 대해서는 비과세 한도가 전혀 없다. 예를 들어 매월 5개 상품에 1억원씩, 매년 60억원을 붓는다고 해도 이자소득세가 전액 면제된다.
조세연구원도 최근 ‘과세형평 제고를 위한 비과세ㆍ감면제도 정비 제언’을 통해 저축성 보험의 비과세 혜택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했다. 연구원은 “장기 저축성보험을 포함해 저축지원 비과세ㆍ감면제도의 감면액은 2012년 1조4,641억원에 달하나, 현 제도의 주 수혜자는 고소득층과 고액 자산가로 볼 수 있어 저소득층의 저축장려라는 정책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도 이 같은 취지를 반영해 9월 세법개정안을 제출하려 했으나 보험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현재는 소강상태에 접어든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인쇄업자의 거액 탈세 사건으로 정부의 입법추진이 다시 탄력을 받을까 업계가 우려하고 있는 것. 경찰에 따르면 인천에서 인쇄업체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1992년부터 2008년까지 무자료 거래 등으로 세금을 내지 않고 조성한 500억원의 비자금 중 총 390억원을 수백개 비과세 보험상품에 쪼개 가입하는 수법으로 관리해 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장기 저축성 보험의 경우 개인이 노후를 준비하는 성격이 강하므로 혜택을 폐지하면 서민들의 장기 저축 유인이 사라질 것”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이번 사례에서도 드러났듯 장기 저축성보험의 비과세 혜택이 수십억~수백억원의 자금을 불입하는 부유층에게 주로 돌아가는 것이 사실인 만큼, 혜택을 완전히 폐지하지는 않더라도 한도를 정해야 한다는 반론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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