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삭제 또는 파쇄돼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았다는 검찰 발표에 대해 참여정부 측은 "정치검찰의 짜맞추기 표적수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참여정부 인사들은 주요 쟁점에 대한 검찰의 결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서 향후 법정에서 뜨거운 공방이 펼쳐질 전망이다. 특히 검찰이 고인인 노 전 대통령을 범죄행위인 삭제를 지시한 인물로 지목함에 따라 이번 사건은 법적 논란에 더해 정치적, 감정적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삭제 지시했나
검찰은 15일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 등 2명을 기소했지만, 문제가 된 대화록 삭제 및 미이관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생존해 있었다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었음 강하게 시사한 것. 검찰 수사로 목숨을 끊은 전직 대통령이 4년 반 만에 다시 범죄행위의 주범으로 끌려 나오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검찰은 이렇게 판단한 주요 근거로 조 전 비서관의 진술을 들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이 검찰에서 일관되게 "노 전 대통령 지시로 대화록 파일을 삭제하고 대화록 문건을 파쇄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참여정부 업무관리시스템 '이지원'에서 초본을 삭제한 후 2008년 2월 14일 띄운 '메모 보고' 내용도 언급했다. '회의록을 삭제하고 대통령님께서만 접근하실 수 있도록…'이란 문구를 노 전 대통령의 삭제 지시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검찰이 내세운 근거만으로 노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조 전 비서관은 이날 언론을 통해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삭제 지시를 받은 기억이 없다"면서 검찰의 발표 내용을 바로 부인했다. 참여정부 측 박성수 변호사도 "조 전 비서관이 올해 1월 (검찰 조사에서) 부정확한 기억에 의존해 잘못된 진술을 했는데 9월과 10월 조사에서는 이를 바로 잡았다"고 전했다. 삭제 지시자로 지목된 노 전 대통령은 고인이 돼 처음부터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조 전 비서관마저 검찰 발표를 부인해 버린 것이다.
더구나 검찰이 제시한 '메모 보고' 에도 노 전 대통령이 삭제를 지시했다는 직접적인 문구는 없다. 참여정부 측은 메모 보고가 대화록이 삭제됐다는 증거는 될 수 있어도 노 전 대통령이 이를 지시했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형사사건 연루자로 언급하려면 다른 사건보다 더 많은 증거를 제시해야 함에도 오히려 추정으로 결론을 내린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초본 삭제 및 미이관, 처벌 대상인가
검찰은 백 전 실장과 조 전 비서관이 대화록 초본을 고의로 삭제하고 완성본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지 않은 행위는 "중대 범죄행위"라고 밝혔다. 특히 백 전 실장의 경우 장관급 인사로 고도의 윤리의식이 필요한 고위공직자라는 점도 강조했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초본을 기록원에 이관하지 않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삭제했다고 밝혔다. 보관하던 있던 완성본 문건도 문서파쇄기로 없앴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정황상 미이관은 단순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검찰은 대화록 초본의 내용이 완성본과 본질적 차이가 없다면서도 "초본이라는 이유로 대통령기록물로 생산되고도 파기될 수 있다는 법적 근거는 없다"고 설명했다. 완성본이 존재한다고 해도 초본은 초본대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시각이다.
검찰은 또 국가정보원에 완성본 형태의 대화록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기록원으로 대화록을 이관하지 행위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참여정부 측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같은 문건이라고 해도 대통령기록물의 문서 보존과 국정원의 문서 관리는 그 취지 및 절차에 있어서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기록원으로의 이관은 후대 전승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지만, 국정원으로의 이관은 보안업무 수행을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것이다.
반면 참여정부 인사들은 검찰 논리를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반적 원칙과 규정에 의하더라도 초본을 대통령기록물로 보거나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참여정부 당시 민정수석을 지낸 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공공기록물법상 초본을 기록물로 볼 수 없다는 사례도 있다. 검찰 역시 회의록 초본은 각하한다"고 밝혔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초본의 부정확한 내용을 꼼꼼하게 수정하라고 지시한 덕에 완성본이 나올 수 있었는데도, 검찰이 수정 지시 취지를 무시한 채 초본을 삭제한 행위만 문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삭제나 미이관 행위의 고의성 부분도 논란거리다. 민주당은 이날 "국정원에 대화록 완성본을 넘겨 관리하도?한 노 전 대통령의 취지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대화록을 고의적이고 조직적으로 이관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억지보다 못한 강변일 뿐이다"고 주장했다. 대화록을 감추려고 했다면 국정원으로 이관하지도 않았을 것이란 뜻이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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