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밤 서울의 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중국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바카라 테이블은 빈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딜러를 둘러싸고 앉은 사람들은 딜러 옆 모니터를 주시했다. 화면에는 게임이 끝날 때마다 플레이어가 이기면 빨간색 원이, 뱅커가 승리하면 파란색 원이 하나씩 더해졌다.
영화 '철도원'의 원작자인 일본 소설가 아사다 지로의 취미는 도박이다. 유럽 각지의 카지노를 둘러보고 쓴 라는 책에서 그는 "룰렛은 많이 생각해야 하는 게임이다. 첫째 숫자의 흐름이다. 나오는 숫자를 보면서 규칙을 발견해야 한다"고 적었다.
수학적으로 보면 관광객들이 바카라 모니터를 주시하는 거나 아사다 지로가 조언하는 것은 헛수고다. 바카라는 뱅커와 플레이어에게 2, 3장의 카드를 배분, 카드 조합의 끝수가 9에 가까운 쪽이 이기는 게임. 참가자는 뱅커와 플레이어 중 누가 이길지에 베팅하면 되는데 복잡한 규정을 걷어내면 동전던지기와 비슷하다. 동전 던지기에서 앞면이 나올 확률이 50%라고 해서 10번 던져 5번이 앞면일 보장이 없듯이, 바카라에서 뱅커가 연속으로 이겼다고 다음 판에 플레이어가 이길 확률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룰렛도 마찬가지. 게임 참가자들은 이전 경기 결과를 참고해 확률을 계산하려고 애쓰지만 구슬은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
돈을 딸 확률에서 카지노 도박은 동전던지기와 다르다. 동전던지기는 확률이 반반이지만 카지노 도박은 업주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 가령 룰렛의 회전판에는 38개 칸이 있다. 1~36의 숫자가 빨간색과 검정색 칸에 적혀있고, 0과 00이 적힌 2개의 녹색 칸이 있다. 색깔이나 홀짝 베팅의 승률은, 이 녹색 칸 때문에 36분의 18(50%)에서 38분의 18(약 47%)로 떨어진다. 바카라는 카드를 추가로 받는 규칙에 따라 뱅커의 승률이 약간 높은데, 이를 이유로 카지노는 뱅커에 베팅해 이길 경우 5%의 수수료를 받는다. 이 5%의 수수료로 업주는 게임의 우위를 지킨다. 기계로 하는 도박도 다르지 않다. 슬롯머신을 비롯해 카지노에 있는 각종 비디오 게임의 환급률은 75% 이상으로 법에 정해져 있다. 국내 카지노들의 실제 환급률은 90% 정도다. 물론 호객을 위해서다.
카드 숫자를 더해 '21'이 넘으면 파산하는 블랙잭에서 카지노의 우위(약 53대 47)는 고객이 먼저 카드를 확인해야 하는 규칙에서 비롯된다. 블랙잭은 다른 카지노 게임과 달리 앞선 판의 결과가 이어지는 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참가자가 승률에 개입할 여지가 있다. 참가자가 이미 나온 카드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리에서 '카드카운팅'이라는 기법을 고안한 미국 수학자 에드워드 소프는 1962년 라는 책을 썼고, 실제로 카지노에서 번번이 돈을 따며 자신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입증했다. 또 1980년대 매사추세츠공대(MIT) 학생들이 팀을 꾸려 카드카운팅으로 돈을 따기도 했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21'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카지노회사가 줄어드는 카드를 끊임없이 보충해 자동으로 섞어주는 기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과 교수는 "어느 순간 우연히 돈을 땄을 때 딱 일어나면 카지노에서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확률이 카지노에 유리하게 돼 있기 때문에 게임을 계속하면 잃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집중력에서도 고객은 불리하다. 카지노의 딜러는 대개 40분마다 교대를 하는데, 밤새 도박을 하는 사람이 딜러를 이길 수는 없는 노릇. 실제로 전문 도박사는 한 번에 35분 이상 도박을 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카지노는, 업주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산업이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인 강원랜드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2,092억원으로 10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외국인 카지노 16곳의 총매출액도 1조2,510억원을 기록했다. 수익성 면에서도 카지노는 다른 산업을 압도한다. 강원랜드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31.2%였고, 외국인 카지노를 운영하는 그랜드코리아레저(GKL)와 파라다이스의 영업이익률도 각각 29.1%, 15.7%를 기록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14.4%였고 현대자동차는 9.9%였다.
정부 입장에서 카지노는 양날의 칼이다. 세금 면에서 카지노는 효자 산업이다. 강원랜드는 지난해 국세와 지방세로 2,314억원을 냈고 관광진흥개발기금과 폐광지역개발기금에 2,359억원을 출연했다. 이는 강원랜드 매출액의 35%에 해당하는 규모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16곳도 지난해 세금 1,023억원과 관광진흥개발기금 1,172억원을 냈다. 반면 사행산업이란 점에서 카지노는 정부에게 골칫거리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6년간 강원랜드에서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48명이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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