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9월은 한국의 5월이다. 한국에서 5월에 그랬듯 칠레에서는 9월에 쿠데타가 일어났다. 차이가 있다면, 5월의 역사를 잊으려는 한국과 달리 칠레는 9월을 아직도 뜨겁게 맞는다는 점이다. 올해는 칠레 쿠데타 40주년이 되는 해여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과거 군사정권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의 규모가 예년보다 컸다.
칠레의 현대사를 흔히 극적이고 격정적이라고 하는데 그럴 때 가장 큰 계기가 바로 40년 전 일어난 쿠데타다.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인들이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있던 대통령관저로 밀고 들어갔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아옌데는 투항하라는 쿠데타 군에 맞서 최후까지 저항하다 결국 자신의 몸에 총을 쏘아 삶을 마감했다. 미국을 등에 업고 합법 정부를 전복시킨 피노체트는 그 뒤 1990년까지 17년 동안 집권하면서 극단적 반공주의와 시장주의를 앞세워 체포, 구금 등으로 4만 명 이상에게 고통을 안겼고 3,000명 이상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냈다. 일부에서 그의 경제적 성과를 평가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피노체트는 독재자가 틀림없다.
피노체트가 물러난 뒤 중도좌파 대통령이 연이어 배출됐는데 그 중 한 명이 미첼 바첼레트다. 아옌데 대통령 시절 공군장성으로 있던 아버지는 피노체트 쿠데타 직후 체포돼 박해를 받다 세상을 떠났다. 바첼레트 자신도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해외로 추방되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후임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바첼레트가 연임 금지 규정에 묶여 재선에 나서지 못한 틈에 대통령이 됐다. 기업가 출신의 우파 대통령으로 경제에서 성과를 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지나치게 친기업적인데다 피노체트 추종 세력과 어설프게 동거하려다 스스로 위기에 빠졌다. 지난해 초에는 피노체트 시절을 규정한 교과서 표기를 '군사독재'에서 '군사정권'으로 바꾸려다 인권단체 등의 반발에 부닥쳤다. 지난해 6월에는 수도 산티아고의 극장에서 대규모 피노체트 추모대회가 열렸는데 이 역시 피녜라 정권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다. 피녜라 때문에 피노체트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아옌데의 비감한 죽음, 그 뒤 몰아 닥친 무자비한 인권 탄압, 독재정권에 아버지를 여읜 딸의 대통령 당선, 정권에 대한 피로감에 기대 탄생한 우파 권력. 지난 40년 이런 식으로 정권이 이어졌던 칠레가 17일 새 대통령을 뽑는다. 여러 정권을 두루 경험한 칠레 국민이 어떤 세력을 선택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바첼레트는 연임 금지 규정에서 벗어나 중도좌파 후보로 나섰다. 그에 맞선 우파 진영 후보는 에벨린 마테이다.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지냈다. 피노체트로부터 핍박을 받은 바첼레트의 아버지와 달리 마테이의 아버지는 피노체트 권력에서 장관을 지냈다. 이번 대선이 가해자와 피해자 딸들의 대결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두 후보의 성장배경이 아니라 경제정책이 이번 대선의 핵심"이라고 했지만 살아온 과정과 경제정책은 별개가 아니다. 두 사람의 공약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반대의 길을 걸어간 아버지들의 사연과 거기에서 나타나는 칠레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칠레의 그것과 여러 점에서 비슷하다. 군사쿠데타를 경험하고 군인 출신이 오랫동안 통치했으며 야권 대통령을 거쳐 지금은 군인 출신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군 인사를 중용하고 새마을운동의 부활을 거론하는 등 아버지 시대를 되살리려는 것을 보면 2세 정치인이 선대의 정치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칠레에서 가해자의 딸이 대통령이 돼야 할까, 피해자의 딸이 대통령이 돼야 할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바첼레트가 훨씬 앞서 있다. 가해자의 딸이 아니라 피해자의 딸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광희 국제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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