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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마다 아로새긴 사연들… 전통그림으로 한국학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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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마다 아로새긴 사연들… 전통그림으로 한국학 읽기

입력
2013.11.1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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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포털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는 전통시대의 그림을 매개로 당시의 문화적 취향과 지식인들의 의식, 나아가 한중일 문화 소통 모습의 일단까지 짚어본 책이다.

안대회, 정민, 정병설 교수 등 계간 편집에 참여하고 있는 국문학, 미술사학 등 다양한 전공의 학자 32명의 글을 다섯 가지 테마로 나눠 묶었다. '마음'에서는 비운의 왕자인 사도세자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개 그림이 등장한다. 아버지에게 사랑 받지 못한 처지가 이 그림에 녹아 있다는 설명이다. 추사의 '영영백운도'처럼 드넓은 하늘 아래 외로이 서 있는 두보의 모습은 벗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고, 퇴계, 율곡의 '심학도' '인심도심도'에서는 전통시대 철학자들이 마음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상하려 했던가를 알 수 있다.

'감각'으로 분류한 대목에서 독자들의 눈이 호사한다. 조선 문인들의 오감을 표현한 그림들 중 포도, 게 그림 및 그와 관련된 시들, 파초 국화 대나무 같은 문인화의 단골 소재들이 등장한다. '표상'에서는 한반도가 일찌감치 호랑이 형상으로 그려졌지만 그것이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토끼 형상으로 탈바꿈된 사연, 왕의 초상인 어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소통'에서는 고려청자의 운학(雲鶴) 이미지가 '상서(祥瑞)'의 메시지를 담은 송나라 그림에서 온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극히 한국적인 이미지로 알고 있는 요소들이 중국 전래라는 것은 전통시대 중국 문화의 영향력을 새삼 일깨운다. 일본의 옛 장편역사소설 에 실린 신윤복 풍의 풍속화는 해외의 풍물을 실감 나게 그리고자 한 일본 화가 교쿠잔의 노력의 결실이었다는 사연도 소개됐다.

눈길 가는 것은 '사연'으로 분류해 소개한 글들이다. 그 중에서도 유미나 원광대 조교수의 '문희별자도를 보는 조선 후기 문사들의 시각'은 전통 유학자들의 의식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

중국 후한시대 학자 채옹의 외동딸이었던 문희는 중국에서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는 집안에서 똑똑한 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인물. 그의 오점은 흉노에게 잡혀가 좌현왕의 첩이 된 뒤 12년 동안 아들 둘을 낳고 산 것이다. '문희별자도'는 그 '오랑캐' 나라에서 고국으로 돌아오는 문희가 아들들과 이별하는 애달픈 사연을 담은 그림이다. 필자가 이 중국 그림 이야기를 한 것은 문희의 삶이 병자호란에 진 뒤 끌려간 당시 조선인의 삶과도 겹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자호란 때 주전론자로 포로로 붙잡혀 갔던 김상헌이 얻어 온 '문희별자도'의 발문을 부탁 받은 우암 송시열은 그림의 사연보다는 멸망한 왕조인 명 황제에 대한 존경과 찬사에 급급한다. 실학자 이덕무의 시는 한술 더 떠 어처구니 없을 정도다. '들뜬 봄날, 놓던 자수 잠깐 놓고서/ 채문희가 자식 이별하는 그림 보며 웃는다/ 부끄러워라, 박명하여 오랑캐에게 잡혀갔으면/ 죽음을 당할망정 두 아이는 왜 낳았던가' 조선 문인들의 의식 속에 문희는 정조를 잃은 여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은 비슷한 필자들이 참여해 수년 전 나온 에 이은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학'이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있지만 거기에 끌려 이 책을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국학 일반의 모습을 아울러서 고루 전하거나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전통시대 그림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를 여담처럼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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