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공황·태국 외환위기 등 극심한 불황 겪은 국가들 분석자살·HIV·전염병 증감률 따른 보건 정책의 대안과 해법 제시
경기가 나빠지면 실직자가 늘어난다. 실업으로 생계에 고통 받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건강 상태도 호황 때보다 좋을 게 없다. 불황은 경제 활동만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보건까지도 위협한다.
그러나 불황 자체가 모든 것을 망친다는 이런 논리가 상식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실제로 불황기에 사망률이 줄어든다는 통계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기름값이 올라가기 때문에 차를 모는 사람이 줄이 든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여전히 주요한 사망 원인 중 하나인 교통 사고율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불황이 사회 구성원의 건강을 전혀 위협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떤 국가에서는 불황을 맞아 자살률이나 질병감염률이 증가한다.
데이비드 스터클러 영국 런던대 보건대학원 명예 연구위원과 산제이 바수 미국 스탠퍼드대 예방연구센터 조교수는 에서 그렇다면 불황을 맞았을 때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은 어떤 이유 때문에 결정적으로 나빠지는지를 분석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문제는 불황 자체보다는 정부가 재정 건전화를 명분으로 지출을 삭감하는 긴축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초래되는 사회안전망 약화라는 것이다.
이들은 책에서 1929년 대공황과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공황 국면, 공산주의 붕괴 이후 옛소련과 동유럽, 1997년 외환 위기 때의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을 분석했다.
미국이 대공황을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으로 잘 알려진 고용 및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규모 공공건설사업을 적극 도입한 것뿐 아니라 주택소유자대출공사를 설립해 100만명의 주택 압류를 풀어주었다. 푸드스탬프 사업으로 급식을 확충하고 공공사업국을 통해 병원을 짓고 예방 접종을 확대했다. 노인을 위한 사회보장법도 만들었다.
하지만 연방국가인 미국은 뉴딜 정책을 수용하는 정도에도 주마다 차이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주지사가 민주당인 루이지애나 같은 곳은 적극적이었고, 보수 공화당인 조지아나 캔사스 같은 지역은 소극적이었다. 다같이 불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루이지애나의 자살률이나 유아 사망률, 전염병 감염률의 감소는 다른 주들에 비해 눈에 띌 만한 것이었다고 이들은 말한다.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 따르면 최악의 은행 위기로 흔들렸던 아이슬란드는 이 시기 사망률이 높아지지 않았다.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더욱 확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리스 정부는 제2차대전 이후 최대의 지출 감축을 결정했고, 불황의 정도에서는 아이슬란드보다 심각하지 않았음에도 HIV 감염자가 52% 증가했고 자살률은 2배 늘었다. 공중보건 프로그램 예산을 대폭 줄인 탓이다. 공산주의 도미노 붕괴 이후 옛소련과 동유럽도,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아시아 각국도 사정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
저자들은 불황기에 정부가 사회보장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지출한다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시민을 더 건강하게 만들 뿐 아니라 경제 성장까지 견인해 결국 부채 감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반대로 그리스 같이 단기적으로 정부 지출을 크게 삭감할 경우 그러지 않아도 감소된 수요를 더욱 감소시켜 사람들은 지출을 줄이고 기업은 어려움을 겪고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말처럼 "IMF가 긴축을 하라고 하면 당장 쫓아내버리라"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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