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선의 저주에 걸려 든 양상이다. 오바마는 14일(현지시간) 속절없이 추락하는 지지율과 민주당 분열 앞에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 문제 조항의 시행을 1년 연기했다. 연방정부 폐쇄(셧다운)까지 감수하며 지켜낸 오바마케어에 스스로 메스를 가한 것이다. 이날 오바마는 백악관 브리핑 룸에서 1시간 동안 '내 탓이오'를 외치고, 민주당 의원들을 대신해 유권자들에게 사과했다.
오바마가 놓인 상황은 역대 재선 대통령들이 걸었던 길과 유사하다. 재선 대통령 7명 중 5명은 재선 1년 차부터 각종 스캔들로 지지율 하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바마의 최대 치적인 오바마케어는 지난달 1일 시행 이후 현재까지 10만6,000여명만 가입해 예상치 50만 건에 크게 밑돌고 있다. 오바마 지지율은 40% 바닥이 뚫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지지율 수준으로 내려왔다. 이 와중에 오바마가 국민이 개인적으로 가입한 기존 보험은 오바마케어 시행 이후 바꿀 필요가 없다고 약속했으나, 막상 보험사가 관련 보험상품을 없애면서 상황이 꼬였다. 이 여파로 기존 보험 가입자 200만 여명이 무더기로 해약됐고, 오바마로선 거짓말을 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재선 대통령 다수가 신뢰의 문제에 빠진다"며 "정직이 지지의 기초였던 오바마에겐 누구보다 더한 압박"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에서도 오바마케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15일 하원에서 처리될 공화당의 오바마케어 폐기 법안에 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동조할 것을 알려져 오바마의 정치적 타격이 예상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번에도 오바마에게 훈수를 두어 '상왕 정치가'의 입지를 굳혔다. 클린턴이 "법을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기존 건강보험을 유지시키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 지 이틀 만에 오바마의 수정조치가 나왔다. 클린턴은 오바마가 공화당과 예산전쟁을 벌일 때는 원칙고수를, 또 국가안보국(NSA) 도청 파문 때는 사과하지 말 것을 주문했고, 오바마는 이를 충실히 따랐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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