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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1월 16일] 어떤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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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1월 16일] 어떤 군인

입력
2013.11.1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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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의 군대체험을 다룬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편이다. 남자들은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신의 군대 시절을 한 번씩은 떠올려 볼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군대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고독이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어떤 소설을 보면, 사선에서 경계를 서던 초병이 고독과 공포를 이기기 위해 허공에 대고 총을 쏘는 장면이 나온다. 때는 한겨울이어서 그 총소리에 나뭇가지에 쌓여 있던 눈더미가 무너져 내린다. 눈이 무너져 내리는 희미한 소리에서 초병은 사랑의 따뜻한 기척을 느꼈을까. 그 초병은 아무래도 섬약한 영혼을 가지고 태어나 그 영혼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처럼 나약한 자의 남루한 사생활을 상상하는 걸 좋아한다. 예컨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할 직업을 가진, 변변치 못한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부모의 옹색함을 배웠을, 잔뜩 주눅이 든 채로 소년 시절을 보냈을 초병. 자신의 의견이나 의지를 표현하는 데 한없이 투박하고 서툴렀을, 좋아하는 것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을 초병의 나약한 심상. 그런 자가 어떻게 자신 앞에 펼쳐진 무한대의 어둠을, 그 거대한 죽음의 은유를 지켜낼 수 있겠는가. 그가 아무리 총을 든 군인이라도 말이다. 이런 가혹함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 또한 상상하며 사는 이의 의무이며 숙명이다.

소설가 김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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