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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빌리러 은행 갔더니 기술력은 안 봐… 부채비율만 따져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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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빌리러 은행 갔더니 기술력은 안 봐… 부채비율만 따져 거절

입력
2013.11.1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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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금속제조업을 하는 B사는 지난해 130억원을 투자해 제3공장을 새로 지었다. 일감이 많아지면서 직원도 57명이나 새로 뽑았다.

대부분 신규투자는 처음엔 투자비 관리비 등 비용은 많은 반면 수입은 별로 없어 마이너스가 생긴다. 투자 후 손익분기점까지 도달하려면 몇 년은 걸리는 게 보통이다. B사도 이로 인해 지난해 설립 27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봤다.

특히 건물은 설립 첫해에 30% 감가상각이 이뤄지기 때문에, 자산비중은 크게 줄고 그 결과 부채비율은 높아지게 된다. 200% 전후였던 B사의 부채비율도 지난해 약 330%까지 높아졌다.

그러나 이 업체 박모 대표는 걱정하지 않았다. 투자가 원래 그런 것이고, 무엇보다 중장기를 바라보고 한 미래투자였기 때문에 당장 오늘내일의 손실에는 연연하지 않았다. 더구나 B사는 국내 굴지의 C대기업 1차 협력사였기 때문에 거래선 걱정도 없었다. 내년부터는 흑자로 돌아서게 될 것이라 판단했고, C대기업과 연간 180억원짜리 큰 계약도 맺었다.

문제는 이 때부터였다. 납품할 물품 양산자금 30억 원이 필요했던 B사는 C대기업이 한 시중은행과 조성한 동반성장펀드를 융통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지만, 부채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C대기업이 나서 "믿을 만한 업체다"라고 얘기를 해줬고, 동반성장위원회까지 나서 설득을 했지만, 은행은 요지부동이었다. 박 대표는 "은행은 재무제표만을 토대로 회사를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며 "왜 부채비율이 늘었는지를 설명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작년 매출액이 452억원에 직원수가 225명이나 된다. 동탑산업훈장도 받았다. 하지만 이유불문하고 부채비율이 높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거래대기업이 나서서 '동반성장 할 중소기업'이라고 얘기까지 해줬는데도, 정작 동반성장펀드는 그림의 떡이 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중소기업의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하기 위한 굵직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중소기업 현장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다. 중소기업들은 "정책적인 큰 그림 보다는 현장관행의 작은 변화가 더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재무제표에 대한 '맹신'이 대표적이다. 부채비율 같은 재무제표가 기업을 판단하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부도 은행도 부채가 늘어난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종류의 부채인지를 따지기 보다는 오로지 숫자 그 자체만으로 지원대상기업을 걸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대기업들은 자기자금이 풍부하지만 중소기업들은 어차피 대출을 받아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투자로 인해 높아진 부채비율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대체 누가 투자를 하려 들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은행 관계자는 "돈을 거저 주는 것이 아니라 빌려주는 것인 만큼 부실화 가능성을 따지지 않을 수는 없다. 부채비율은 그 가장 기초적인 지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도 은행도 타성에 젖은 심사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의 현재'를 말해주는 재무제표만 보지 말고, '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비재무적 요소를 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 없이 어떤 큰 정책이나 지원도 중소기업 환경을 바꾸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정책본부장은 "기업을 평가할 때 재무적 요소뿐만 아니라 기술력, 사업화 가능성, 과거 실적 등 비재무적인 요소도 함께 평가해야 한다"며 "과거 정부과제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냈거나 타 은행과 아무 문제 없이 장기간 거래한 기업들의 정보를 정부 부처간, 금융권간에 공유할 수 있도록 '기업 평가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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