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현 시대를 진단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돼 버렸습니다. 마약, 알코올, 음란물, 게임, 스마트폰 등 그 누구라도 중독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독립영화를 만들어 온 김상철(45ㆍ목사) 감독이 마약 등 중독자들의 좌절과 희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중독'을 내놨다. 다음달 개봉을 앞둔 영화에는 미국, 영국, 스페인, 인도, 일본, 한국 등 6개국에서 만난 중독자들의 극복기와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담겼다. 13일 김 감독이 대표로 있는 파이오니아21연구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몇 해 전 한 선교사에게 '수년 내 전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줄 단어, 중독이 우리 공동체와 가족을 모두 무너뜨릴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울렸어요. 극복모델을 찾아 나섰는데, 국내에선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결국 각 나라를 돌며 다큐를 찍기로 했죠."
김 감독은 그때부터 약 3년간 4,5명의 단출한 스태프들과 함께 스페인 집시촌을 시작으로 영국의 사설재활시설, 인도 델리 등에서 중독자들과 동고동락했다. 현지 시설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절망의 나락에 빠져든 이들을 거리에서 뒤쫓아가 마음을 열게 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분실사고에 대비해 카메라를 다리에 묶고 잠을 자기도 했다.
김 감독은 "인터뷰를 하던 중독자가 합병증으로 숨지기도 하고 고된 촬영에 스태프들이 많이 아팠다. 촬영하는 내내 과연 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꼬박 3년 만에 영화는 완성됐다.
그는 영화를 찍는 동안 사람 사이의 신뢰의 힘을 절감했다고 했다. 온갖 노력 끝에도 좌절을 거듭했던 중독자들이 주변의 지지와 격려 속에 결국 약을 끊는데 성공하는 일을 자주 지켜봤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만난 한 청년은 치료사가 자신에게 자동차 키를 주며 심부름을 시키자 차를 팔아 약을 사야겠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었다가 결국 치료사에게 돌아와 '나를 믿어줘 고맙다'고 했던 사연을 털어놨죠. 인생에서 처음 자긍심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김 감독은 "과연 국내 중독자들에게 장기간 지지와 격려를 제공하는 시설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했다. 또 중독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과 국가의 관심 등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꼭 몸져누워야 중독인 것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우리사회는 아직까지 어린 학생들이 자신을 잃고 공허한 세상에 혼자 내버려져도, 큰 사고를 치기 전까지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어요. 이번 영화가 무엇 때문이든 자신을 잃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하나의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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