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계약업체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여섯 달째 폭로하고 있는 NSA 기밀 문건들은 미국은 물론 지구촌 시민들에게 우리가 가공할 감시사회에 살고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2001년 9ㆍ11테러 이후 반테러 첩보기구로 급성장한 NSA는 억 단위의 사용자를 둔 글로벌 인터넷기업과 통신회사에서, 전세계 인터넷 정보의 80%가 경유하는 해저 광섬유 케이블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개인정보를 수집했다. 정예 해커들로 구성된 해킹 전담부서를 운영했고, 해외 인터넷 서버 어디든 침투해 개인의 이메일ㆍ메신저 교신 내용을 훔쳐볼 수 있는 첨단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러한 저인망식 첩보행위는 평범한 시민을 가리지 않았고 결국 법원의 제지를 받았다. 스노든 측으로부터 수천 건의 기밀 문건을 받아 검토한 뉴욕타임스는 "NSA의 본래 임무인 테러 방지는 그들 관심사의 일부에 불과하다"며 "NSA의 활동 범위와 공격성은 숨이 멎을 정도"라고 논평했다.
한해 108억 달러(11조4,000억원)의 예산을 쓰는 이 공룡 조직은 미국 메릴랜드주 본부를 넘어 국내외로 물적 토대를 확장했다. 조지아ㆍ텍사스ㆍ콜로라도ㆍ하와이ㆍ알래스카ㆍ워싱턴ㆍ유타주(州)에 대규모 시설을 신설하거나 증설했고, 한국 영국 일본 호주에 해외 첩보 거점을 마련했으며, 해외 주재 미국대사관이나 미군기지에도 첨단 도청장치를 설치해 근거지로 삼았다.
가히 정보사회의 야만이라고 부를 만한 NSA의 폭주에 대한 공분은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멕시코 브라질 등 미국 우방국 역시 NSA의 첩보대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폭발하고 있다. 미국이 한때 35개국 정상들을 도청했고 최근까지 동맹국 정상 도청을 지속했다는 폭로 속에 브라질은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했고 독일은 유엔 총회에서 규탄 결의를 주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거센 비난 여론이 일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NSA의 정보수집 활동을 재점검하겠다"며 뒤늦게 수습에 나섰고, 미국 의회도 NSA의 통화기록 수집 허용 요건을 테러 조사로 엄격히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스노든의 폭로는 그의 뜻대로 국가의 개인 사생활 침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지만, 그러나 여기까지일 것 같은 분위기다. 미국 정보당국 수장들은 당장 반격에 나섰다.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동맹국의 도청 항의에 "다 알면서 화를 낸다"고 일축하더니 "백악관은 해외 감청정보를 접하고 있다"며 오바마의 NSA 개혁 방침에 도전했다. 파문의 당사자인 키스 알렉산더 NSA 국장은 의회 청문회에서 외교관 출신 의원의 추궁을 받자 "도청 정보를 자주 주문한 이들은 (당신 같은) 외교관"이라고 쏘아붙였다.
언뜻 적반하장으로 비치는 이 광경은 정부와 정보기관의 깊은 공생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스노든이 공개한 NSA 내부 문건은 백악관 국방부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부터 국무부 에너지부 국토안보부 상무부 무역대표부에 이르는 수다한 정부기관을 '고객'으로 지칭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정보에 대한 탐욕을 억누르고 NSA 축소를 단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회 역시 여당 소속인 상원 정보위원장이 앞장서 NSA의 대량정 보 접근권을 보호하는 내용의 제한적 개혁법안을 제출하는 등 견제 의지를 의심받고 있다.
NSA의 도청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독일과 프랑스는 미국에 영국과 같은 수준의 정보공유협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첩보 선진국' 미국과 상호 도청 금지, 수집정보 일체 공유를 골자로 하는 첩보동맹을 맺고 싶은 유럽 국가들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인터넷기업들이 NSA의 정보제공 압력에 터뜨리는 불만은 그들 자신이 미국의 느슨한 개인정보 보호법에 편승해 사업을 확장해왔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느끼기 힘들다. 스노든 파일은 괴물이 되어버린 세계 최대 정보기관 NSA의 발밑, 그러니까 9ㆍ11테러 이후 세계의 근간으로 뻗친 정보권력의 단단한 뿌리까지 드러내고 있다.
이훈성 국제부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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