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이 맛깔지게 처리된 한국어 대사를 음미하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12년 묵은 영화에 얼마나 공감할까도 의문이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웃음이 종종 터져 나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박수도 쏟아졌다. 충무로 최고 흥행술사에 대한 영국 관객들의 반응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3일 오후(현지시간) 런던 중심부 소호지구의 커존극장에서 열린 '공공의 적' 상영회는 한국 상업영화의 해외 성공 가능성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자리였다.
강우석 감독 특별전이 런던에서 갈채를 받고 있다. 강 감독은 '투캅스'시리즈와 '실미도' '공공의 적' 시리즈 등을 만든 충무로의 대표적인 상업영화 감독이다. 영국을 비롯해 유럽에서 아시아영화는 예술영화 위주로 소비되고 있다. 임권택 이창동 김기덕 홍상수 감독 등 예술영화를 주로 만드는 작가주의 감독들 작품들이 한국영화의 전부로 여겨지고 있다. 충무로 주류 상업영화 감독의 특별전은 유럽에선 무척 이례적인 행사다. 강 감독의 해외 특별전은 이번이 처음이기도 하다. '공공의 적'과 '강철중: 공공의 적1-1' '실미도' '전설의 주먹' 등 6편이 상영 중이다. 이번 특별전은 주영 한국문화원이 주최하는 제8회 런던한국영화제(11월7~22일)의 주요 행사로 마련됐다.
특별전에 대한 관심은 영국 언론이 먼저 보였다. 지난 5일 영국의 주요 일간지 더 타임스는 런던한국영화제를 소개하며 강 감독의 사진과 함께 특별전 행사를 비중 있게 처리했다. 관객들도 뜨겁게 반응했다. '공공의 적'이 상영된 커존극장의 249석은 일찌감치 모든 자리가 다 채워졌다. 비열한 폭력배 산수(이문식)가 철중(설경구)에게 부당한 취조를 당하는 장면, 시체안치소에서 마약 장수 대길(성지루)과 칼잡이 용만(유해진)이 설전을 벌이는 모습 등에서 객석이 웃음으로 출렁였다.
영화 상영 뒤 강 감독과 주연 배우 설경구를 대상으로 30분 가량 이어진 질의 응답 행사에선 관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한 영국 여성 관객은 행사가 끝난 뒤 자신이 가져온 '공공의 적' DVD와 강 감독이 제작한 '귀신이 산다'의 한국어 영화 전단 등에 강 감독의 사인을 일일이 받기도 했다. 전혜정 런던한국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작가주의 감독들 영화가 영국에 주로 소개됐는데 강우석 감독 특별전을 통해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예상보다 관객들의 호응도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
14일 오후 런던영화아카데미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도 강 감독과 한국 상업영화에 대한 해외 영화학도들의 관심을 반영했다. 영국과 인도 중국 등에서 온 영화 연출 전공 학생 30여명이 참석해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이 행사에서 강 감독의 영화 인생과 연출관, 한국 영화산업 등에 대한 궁금증이 쏟아졌다. 강 감독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감독의 꿈을 품어왔던 과거와 사회적으로 민감했던 '실미도' 등을 만들었을 때 겪은 어려움, 유명 감독이 된 뒤에 더 극심해진 창작의 고통 등을 유머를 곁들여 담담한 어조로 털어놓았다. "'실미도'로 1,100만 관객을 모았다"는 말에 학생들은 놀라움을 표했다. 강 감독이 "정말 감독이 되고 싶다면 영화 만 편을 보면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영화에 미치길 바란다"고 조언을 건넸을 땐 학생들이 박수로 화답하기도 했다.
런던=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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