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순간 핑 돌면서 어지럽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오른다. 사소한 일들을 자주 깜빡깜빡 한다. 머리가 종종 아프다. 손발이 전에 비해 차진 것 같다. 부모님이 말 끝에 이런 증상들 얘기하시는 경우 종종 있다. 의사한테 한번 가 보시라고 권하면 병원은 무슨, 나이 들면 다 그래 하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사실 나이 들어서 생기는 증상들인 건 맞다. 하지만 다 그런 거라고 넘길 만큼 가벼운 건 아니다. 빈혈도, 저혈압도 아닌 심장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60세 이상의 어지럼증에 대해 자가진단은 금물이다.
고령자가 경험하는 어지럼증의 원인은 크게 빈혈과 저혈압, 서맥성 부정맥 등이다. 이 중 서맥성 부정맥에 대해선 거의 모르는 사람이 많다. 한 마디로 심장이 잘 안 뛰는 병이다. 1분에 60~100회 뛰어야 정상인 심장이 50회 미만으로 박동하거나 간혹 수초 동안 아예 멈추는 것이다. 때문에 어지럼증과 전신 무기력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심장이 제대로 안 뛰니 온몸으로 가야 할 혈액 양이 줄어 손발이 차지고 뇌 기능이 떨어지며 심하면 실신하거나 사망까지 이를 수도 있다. 주요 원인은 심장의 노화로 추정되고 있다.
보통 부정맥 하면 흔히 심장이 계속해서 또는 간헐적으로 지나치게 빨리 뛰는 병이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빈맥성 부정맥이나 간헐적 부정맥은 각각 가슴이 두근거리고 갑자기 덜컹거리는 등의 특이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 비교적 쉽게 감지한다. 하지만 심장 박동이 서서히 느려지는 서맥성 부정맥은 아예 정신을 잃고 쓰러지지 않는 한 그저 잠깐씩 어지럽고 숨이 차는 정도니 환자도 주변에서도 눈치채기가 어렵다. 게다가 환자의 약 75%가 60세 이상이다. 대개 늙어서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밖에 없다.
약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시중에 나와 있는 항부정맥제는 대부분 빈맥성 부정맥 치료용이다. 심장 박동을 늦추는 약이란 얘기다. 안 그래도 박동이 더딘 서맥성 부정맥 환자는 쓸 수가 없다. 거의 유일한 치료법은 작은 금속 조각처럼 생긴 영구심박동기를 빗장뼈(쇄골) 아래 이식하는 것이다. 이 기기는 심장이 제대로 뛸 때는 가만 있다가 박동이 느려지는 걸 감지하면 전기 신호를 보내 심장을 자극한다. 한번 이식해 평균 7, 8년 사용한 뒤 간단한 시술로 교체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의료기기 이식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유독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망설인다. 실제로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노태호 교수팀 조사 결과 서맥성 부정맥으로 영구심박동기 시술을 받은 환자가 국내에선 인구 100만명 당 평균 41.7명(2009년)인데 비해 일본은 272명(6.5배), 대만은 172명(4.12배), 싱가포르는 94명(2.25배)으로 집계됐다. 이들 나라는 한국과 서맥성 부정맥 발상 양상이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국내에선 불필요한 약물 치료 등에 의존하다 증상을 키우는 환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노 교수는 "서맥성 부정맥 같은 노인성 질환을 제대로 치료하면 삶의 질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며 "60세 이상에서 어지럼증이 생기면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전문의와 상담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축구감독 알렉스 퍼거슨 등도 영구심박동기를 이식 받아 사용하고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