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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마구 내모는 '너도나도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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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마구 내모는 '너도나도 사냥꾼'

입력
2013.11.1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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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이다." 지난 8일 오전 서울 연희동 서울외국인학교 앞에서 수컷 멧돼지를 마주한 순간 베테랑 엽사 한상돈(52)씨는 신음처럼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빨에 난 흠집, 갈퀴 길이 등을 보고 20일 전 북한산에서 쫓던 멧돼지임을 직감한 것. 먼저 출동한 경찰이 쏜 권총탄 5발을 맞고도 사납게 날뛰던 멧돼지는 한씨의 총알을 귀밑 급소에 맞고 쓰러졌다.

한씨는 "180㎏에 육박하던 멧돼지가 20일만에 130㎏ 정도로 살이 빠졌다"며 "잔뜩 굶주린 놈이 먹을 것도 없는 도심에 나타난 건 잘못된 제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1시간 전 부암동에서 50㎏짜리 멧돼지를 사살하고 오는 길이라는 그는 "이달 들어 벌써 4마리를 사살했다. 서울시내에서 하루에 두 마리를 잡은 건 20년 엽사 생활 중 처음"이라고 했다.

멧돼지의 도심 출몰이 잦아지면서 관계당국이 개체 수 조절 등 야생동물 관리에 실패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농작물 피해 예방을 위해 운영하는 유해조수포획 제도가 개정되면서 멧돼지를 도심으로 쫓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유해조수포획이란 야생동물로 인해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 농민이나 엽사들에게 포획 자격을 주는 제도로, 2002년 본격 도입된 뒤 2011년 9월 관련 지침이 개정됐다.

개정지침이 자질부족 엽사 양산

환경부가 지침을 개정하기 전에는 지자체의 의뢰를 받아 수렵인 단체인 야생생물관리협회(당시 대한수렵관리협회)가 준법성, 전문성, 경력 등을 고려해 엽사를 추천했다. 수렵계 관계자는 "현장을 함께 뛰는 수렵인이 직접 추천하는 엽사들로 업무수행능력이 탁월할 뿐 아니라 불법행위를 할 가능성이 낮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유사 단체들이 난립하는 등 잡음이 일자 각 지자체 공무원들이 유해조수포획에 나설 엽사를 직접 선발하도록 지침을 바꿨다. 선발 기준은 '수렵면허 획득 5년 이상, 밀렵 전과가 없으며 최근 5년 내 수렵 경력이 있는 엽사'. 최병진 한국자연연구소 박사는 "전문성이 부족한 공무원들이 자질이 떨어지는 엽사들을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기준만 충족하면 원하는 엽사 모두에게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무차별 포획으로 도심까지 몰려

지난해 2월 엽사 4명이 유해조수포획 허가를 받은 경북 칠곡군을 벗어나 의성군 야산에서 멧돼지를 잡다 밀렵감시단에 적발됐다. 이같이 느슨한 기준으로 선발된 자질 부족 엽사들이 허가 지역을 벗어나 밀렵 또는 무차별 포획을 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야생생물관리협회에 따르면 밀렵 적발건수는 지난 10년간 연 평균 660여건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원칙 없는 포획이 멧돼지의 도심 출몰에 직접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철훈 야생생물관리협회 부회장은 "이들은 농작물 피해 예방에는 관심이 없고 살코기 600g 당 1만원을 받고 불법 거래를 하기 위해 맹견까지 동원해 밀렵을 일삼는다"며 "멧돼지 생태를 잘 모르는 엽사들이 산 위에서 몰고 내려오는 탓에 멧돼지들이 도심에 출몰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환경부에 따르면 최근 서울시내에서 멧돼지 출몰 건수는 2011년 6건에서 지침 개정 후인 2012년 294건으로 급증했다. 20년 경력의 엽사 윤모(47)씨는 "수렵장에서도 멧돼지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도심에 출몰하는 멧돼지는 늘어난 격"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당수 지자체들이 엽사 선발을 둘러싼 압력과 빈번한 현장조사 업무 등 부담을 덜기 위해 농작물 피해가 없어도 대규모 포획단을 편성, 불법 운영하고 있다. 권순찬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장은 "야생생물보호및관리에관한법률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유해조수 포획은 반드시 피해 확인을 거친 후 생태계 교란이 발생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허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농작물 피해가 없는 겨울철에도 50~100명의 포획단을 운영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환경부 관계자는 포획단 운영 실태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지침 개선, 도 단위 수렵장이 대안

멧돼지 개체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환경부가 2001년 수렵장을 도 단위에서 시ㆍ군 단위로 전환한 탓도 크다. 여러 곳에 수렵장을 만든다는 취지였지만 지자체들은 총기 사고 등을 우려해 수렵장 설치를 기피하고 있다. 올해 150여개 지자체 중 21곳만 수렵장을 개장했다.

전문가들은 멧돼지 도심 출몰을 줄이려면 엽사 선발 및 수렵장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병진 박사는 "도심에 출몰한 멧돼지는 자연현상이 아닌 정책 오류가 빚은 인재"라며 "중앙행정부처가 관리하는 전문기관이 엽사를 선발하고 관리하도록 하고 맹견을 동원한 밀렵도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철훈 부회장은 "도 단위 순환 수렵장제를 회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 단위 수렵장은 시ㆍ군 단위보다 면적이 넓어 멧돼지를 허가받은 지역 안에서 포획하기 쉽고 대량 포획으로 회복기가 길어 개체 수 관리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수렵장 내 총기사고는 수렵면허 시험과목에 사격 실기과목을 추가하고, 정기적인 교육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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