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특급 태풍 하이옌의 직격탄을 맞은 필리핀 지원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대조적인 행보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이번 재난 외교에서 중국은 미국에 완패를 당하고 있다.
미국은 군사작전처럼 빠르고 대규모로 지원에 나서 다른 나라를 압도했다. 가장 먼저 구조와 지원 방침을 밝혀 국제사회의 지원 물꼬를 튼 것도 미국이다. 미군은 10일 해병 90명과 2대의 KC-130J 수송기를 급파한 뒤 다음날 해병대 함정을 보내 구조 및 수색, 생필품 수송을 지원했다. 12일에는 핵 항모 조지 워싱턴호와 순양함 2척, 구축함 2척, 지원함 1척을 현지로 이동시켰다. 섬이 산재한 피해지역에 함정 지원은 실질적 도움이 되고 있다.
미국이 재난구조에 군사력까지 동원한 것과 달리 중국은 적십자를 통한 10만달러, 인도적 지원을 위한 10만달러 등 20만달러를 지원한다는 입장만 발표했다. 미국 국무부가 긴급 지원키로 한 2,000만달러의 100분의 1밖에 안되는, 항모 반나절 운영비에 불과한 냉담한 지원이다. 이를 두고 벌써 미국이 아시아에서 정치 군사적 입지를 강화할 계기가 마련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미군의 아시아 주둔이 중국과 달리 자연재해를 포함한 긴급사태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인도네시아, 일본의 자연재해 때도 대규모 지원으로 훗날 관계 개선을 이룬 전례가 있다. 2004년 인도양 쓰나미(지진해일) 사태에 미국은 항모 에이브러햄 링컨 호를 비롯 해군함정과 헬리콥터 등을 급파해 무려 13만명 이상이 희생된 인도네시아를 적극 도왔다. 1991년 동티모르 사태 이후 최악으로 치닫던 양국 관계는 이후 극적으로 회복됐고, 인도네시아는 자국에서 멀지 않은 호주에 미국이 해병을 순환배치 하는 것까지 용인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는 미군 2만4,000명이 투입된 '친구작전'을 50일간 벌였고, 일본은 이후 미군 기지이전에 대한 입장을 전향적으로 수정했다. 이번 하이옌 재난 지원 역시 필리핀 내 해병 기지와 해군 순환기지 허용 협상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중국은 쥐꼬리 지원으로 필리핀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친선 이미지를 구축할 호기를 날려버렸다고 로이터 통신은 지적했다. 중국이 지원에 소극적인 이유는 필리핀 서부 해역의 스카보러섬(중국명 황옌다오)의 영유권 갈등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세계 2위 경제대국 면모에 어울리지 않은 소액 지원과 인도적 문제를 자국 이해와 연결 짓는 것에 대해 중국 안에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조치는 동남아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일본이 이번 사태에 1,000만달러를 우선 지원하고 구조대를 파견키로 한 것과도 비교되고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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