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장, 검찰총장 등 인사청문회 후보자들이 자료를 부실하게 제출하거나 "나중에 제출하겠다"며 시간 끌기로 일관해 논란을 빚고 있다. 청문위원들의 자료제출 요구→후보자들의 뭉개기→청문회 정회라는 파행이 반복되면서 "후보자들이 청문회를 무력화해 불리한 검증을 피해가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후보자들의 '배짱'은 11일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부터 감지됐다. 청문회는 11일 오전 10시 열릴 예정이었지만 황 후보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재직 당시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10일 밤 12시쯤에야 제출했고 이마저도 사용 내역 중 1,600여 만원이 누락된 부실 자료였다. 또 자녀의 장학금 수령내역에 대해서는 구체적이 내용이 적혀 있는 않은 표만 냈고, 장학금 수령 근거가 되는 성적은 '개인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제출하지 않았다.
청문회 특위 민주당 간사인 김영주 의원은 "후보자 검증도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자료가 없다"며 증인 선서도 전에 정회를 요청하는 등 파행을 빚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불만을 드러냈다. 홍일표 의원은 "황 후보자가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는 '이 질문은 ○○의원 답변서에 나와 있으니 참고하라' 등 형식적인 답변이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12일과 13일에 열린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의 청문회에서도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문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 당시 사용한 법인카드 사용 내역,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 매매 계약서 사본과 당일 이뤄진 전세계약서 등을 제출하지 않았다.
김 검찰총장 후보자도 아들의 병역 면제 경위를 밝히기 위한 병적 기록부 요청에 대해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제출하지 않았다. 국회 법사위 소속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김 후보자 측에)수 차례 병역 관련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리저리 시간 끌기로 일관했다"며 "검찰에서 일부러 지연 작전을 펴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김 후보자는 신군부의 내란 목적 비상계엄 확대조치인 5ㆍ17과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헷갈린 서면답변서를 냈다가 성의가 없다는 질타를 받았다.
이들 후보자들이 이처럼 부실 자료나 자료제출 거부를 서슴없이 하는 데는 성긴 법 규정이 악용한 측면이 크다. 국회법(128조)과 인사청문회법(12조)에 따르면 인사청문회 대상인 공직후보자들은 자료요구 5일 내 관련 자료를 제출해야 하며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예외조항도 공무상 비밀, 외교ㆍ군사 관련 정보 등으로 한정돼 있다. 하지만 후보자들이 자료 제출을 거부했을 경우 제재 규정이 없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등에관한법률'를 준용해 고발 조치는 가능하지만 자료 제출을 강제할 강력하고 직접적인 법 조항이 없을뿐더러 고위 공직자를 일일이 고발하기도 만만치 않다"며 "후보자가 자료 제출을 거듭 거부할 경우 청문위원들이 부적격 판정을 내리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강력한 법적 조치"라고 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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