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올 봄호)은 세 겹의 이야기다. 첫째는 외국계 화장품 회사에 다니며 가계를 해결하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 그녀는 자신이 일하러 나간 사이 남편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심을 품고 있다. 둘째는 퇴직한 이후 서울 근교의 부자 동네에 거처를 마련해 홀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의 이야기. 그는 이웃으로 산책하러 나갔다가 나이 어린 부부를 발견한 이래 그들의 동태를 엿보고 대화를 엿듣는 데 재미를 붙인 상태다. 셋째는 그 이십 대 초반 부부의 이야기. 그들은 일정 주기로 그녀의 아버지 동네에 들러 다정한 커플처럼 행동하지만 그들 사이의 신뢰는 그리 완벽하지 않다.
이 세 이야기는 그 회사원 여자가 밤이면 산책하러 나가는 아버지를 수상하게 여겨 남편을 데리고 염탐하러 갔다가 아버지한테서 그 어린 부부의 일화를 듣고 돌아온다는 줄거리 속에 교묘하게 배열돼 서로 반향을 일으킨다. 그 이야기들에는 부부간 결속을 해치는 모종의 거짓에 대한 의혹이 공통으로 나타난다. 가정에 충실한지 의문인 그녀의 남편은 줄기차게 이야기를 지어내는 재주가 있고, 그녀의 아버지는 추측하건대 혼외정사에 빠졌다가 손익을 따져 그녀의 어머니와 이혼했으며, 그 어린 부부 중 남편은 아내에게 정직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 이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부부 사이마저 예외로 두지 않는, 사회에 널리 퍼진 기만의 풍속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도덕적 고발에 대한 정열 때문에 이 단편이 출중한 것은 아니다. 흥미의 초점은 거짓 자체가 아니라 거짓 의혹으로 불안한 마음에 있다. 작중인물들은 불신과 미혹의 습격을 당한 나머지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조차 불가해하다. 아버지가 어떤 꺼림칙한 비밀이 있다는 추정을 더욱 확고히 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가 자신도 영원히 알지 못할 뭔가를 중얼거리며 잠든다는 소설의 결말은 상징적이다.
종래에 일상생활 속의 불안을 다룬 소설이 그것을 유발하는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말했다면 '산책'은 불안에 잠식된 마음 바로 그것의 상태를 제시한다. 느끼고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어쨌든 버리지 않는 인물이 다수파인 한국소설의 인간학을 고려하면 확실히 새로운 발상이다. 정상과 이상, 이성과 광기, 분별과 망상의 경계에서 개인이 살아가는 유령 같은 정신적 삶이 바야흐로 그에 적합한 문학적 표현을 얻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다. 손보미 작가가 머잖아 대성하기를 축원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심사를 마쳤다.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위원 신경숙, 우찬제, 황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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