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마약ㆍ도박ㆍ알코올과 함께 '4대 중독' 차원에서 관리하는 내용의 '중독 예방ㆍ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의 "꼰대적 발상"이란 지적에 법안 발의자인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게임에 중독되면 가족 삶까지 피폐해지는 사실을 모르는가"라고 재반박하며 정치권으로 공방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게임업계와 콘텐츠업계 등은 "창의적 문화콘텐츠인 게임의 문화ㆍ산업ㆍ놀이적 가치를 외면한 법"이라며 반대 서명을 벌이고 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게임 중독의 본질적 원인은 가족과 교우관계, 학교폭력과 같은 다른 사회적 요인에 있다"며 "단순히 법 제정을 통한 국가관리와 치료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이 제정되면)게임콘텐츠도 광고ㆍ유통 판매에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게임 중독으로 고통 받는 아이와 부모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게임'이 아닌 '게임 중독'을 예방ㆍ치료하자는 법"이라는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독은 중독일 뿐 인터넷이든 약물이든 착한 중독은 따로 없다"며 "수십 편의 뇌영상 연구에서 게임 중독에서도 물질 중독과 동일한 병리기전이 보고됐는데도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이 법을 반대하는 건 궁색하다"고 지적했다.
● 이해국 의정부 성모병원 교수"게임 막는 게 아니라 중독 막자는 것경제 논리만큼 아이의 미래도 중요"게임중독 고위험군 47만명 달해중독 예방·치료 사회안전망 필요신체·정신적 문제 뇌연구도 나와
인터넷상에서 '게임중독법 논란'이 뜨겁다. 게임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학계와 관련 생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위기의식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인터넷게임중독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게임산업을 절대선인 것처럼 전제하는 의견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사회가 인터넷게임중독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독 경로나, 주로 나타나는 나이와 성별, 신체ㆍ심리적 문제 등은 중독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복지서비스와 상담치료ㆍ정신의료적 개입이 필요한 정신건강과 발달의 문제라는 것은 그것이 인터넷중독이든 약물중독이든 핵심적으로 다르지 않다. 중독된 아이들은 모두 일상생활기능의 저하가 심해지고, 스스로 조절 능력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치료의 필요성을 당사자가 느끼기 어렵다. 실제 의학영역에서의 근거기반 상담치료방법은 이러한 중독대상자의 특성에 맞춰 고안된 것으로 모든 중독에서 유사하다. 이 법은 게임이 아닌 게임중독을 예방하고 치료하자고 제안할 뿐이다. 마약과 게임을 같이 취급했다면, 마약관리법이나 대마관리법에 게임을 넣었어야 하지 않을까?
게임중독이 4대 중독의 하나로 이 법에 포함됐다 해서, 대다수 건전이용자가 영향 받을 일은 없다. 예컨대, 통계를 분석하면 잠재적위험군 183만명, 중독고위험군 47만명, 중증중독군 5만명(고위험군의 10% 추정)등으로 추산해볼 수 있다. 이들 중 대다수인 가볍게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사실 이 법과 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최소 5만~47만 명은 스스로 게임사용을 조절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 법은 이들에게 효과적인 치료적 개입서비스가 제공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중독 관련 산업의 인허가와 관리를 관장하는 부처가 중독 예방과 치료까지 전적으로 책임지는 나라는 없다. 예방과 치료는 엄격히 보건의료의 원리에 맞춰 중립적으로 제공돼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중독예방치료사업의 근거가 되고 있는 사행성산업통합관리법, 국가정보화기본법,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 등은 모두 관련 산업의 진흥을 위한 법이니 중독 예방과 치료서비스를 철저히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 법에서 제안하는 종합적 관리는 지역단위 서비스기관의 기계적 통합이 아니다. 중독관리와 연관된 부처가 모여, 해당 부처 서비스가 정신건강서비스로서의 질적ㆍ양적 효과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게임중독의 경우 미래창조과학부와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가 서로 다른 조사도구, 조사방법을 통해 그 실태를 조사하니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인터넷게임중독이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아 이 법을 반대한다는 관점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이 법은 특정한 의료행위의 가능여부를 판단하는 법이 아니다. 과도하게 인터넷게임을 이용하고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인구 비율이 충분히 공공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정도가 됐다는 판단에 따라 이에 대한 예방치료재할 안전망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인터넷중독아동에서 정상아동에 비해 여러 가지 근골격제질환이나, ADHD 등 신체ㆍ정신적 문제로 의료기관을 찾는 비율이 2배라는 결과도 보고된다. 엄연히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지역사회상담기관과 의료기관에서 인터넷게임문제로 치료적 개입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 법을 반대한다는 게임업계의 논리는 참으로 궁색하다.
이 법으로 게임업계 위축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게임산업이 미래핵심창조산업이기에 당연한 우려다. 그러나 미래산업 육성이라는 구호 속에 숨은 경제 우선논리를 경계한다. 관련 산업의 미래만큼이나 게임중독에 빠져 건강하게 성장할 기회마저 상실할지 모르는 아이들의 꿈과 미래도 중요하다. 이번 입법과정의 논의가 진정 세대의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아이들이 무엇을 통해, 어떠한 문화를 통해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고 누려야 하는지를 성찰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게임은 창의적 문화 콘텐츠여러 장점 외면한 규제는 득보다 실"게임 중독의 원인은 복합적문화·산업적 가치 외면 안 돼규제보다 자율적 관리가 적합
단도직입적으로 게임이 4대 중독법에 포함되어서는 안 되는 4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게임은 중독물질이 아니라 창의적인 문화콘텐츠라는 점이다. 주지하듯이 최근 논란이 되는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중독 예방ㆍ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이하 중독법)은 게임을 알코올,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전국민이 즐기는 게임의 문화적, 산업적, 놀이적 가치를 외면하고 인터넷 게임을 알코올, 도박, 마약과 동일하게 중독물질로 규정한 것은 게임에 대한 편협하고 일방적인 관점만을 주장하는 것이다. 게임은 중독물질이 아니라 놀이와 감각과 즐거움을 부여하는 창의적인 문화콘텐츠이다. 게임이 중독법에 의해 중독물질로 규정되는 순간 게임의 창의적인 요소들은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게임의 문화적, 예술적 가치들은 중독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둔갑한다.
둘째, 창조경제, 문화융성의 시대에 게임산업이 붕괴될 위기에 처해있다는 점이다.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중독법은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법이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 법률안에는 게임산업을 규제하는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발의안 5조 '다른 법률과의 관계' 조항에는 '국가는 중독의 예방ㆍ치료 및 중독폐해 방지ㆍ완화에 관한 다른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경우에는 이 법에 부합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어 사실상 게임관련 법률안이 이법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14조 '중독에 대한 광고의 금지 조항'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중독을 예방하고 중독폐해를 방지ㆍ완화하기 위하여 중독물질 등에 대한 광고 및 판촉을 제한하는 데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이 법이 통과될 경우 게임콘텐츠는 광고 및 유통 판매에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게임이 중독법에 포함되면 게임을 만드는 젊고 창의적인 개발자는 마약제작업자와 동급으로 분류되며, 전세계적으로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국내 게임기업들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산업과 문화융성을 중요한 국정과제로 제시하고는 게임을 마약과 같은 중독물질로 규정하는 법을 만든다면, 누가 그 국가정책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을까?
셋째, 게임중독의 원인은 복합적이라는 점이다. 게임중독의 원인은 게임 그 자체에 있지 않고 복합적인 요인을 가지고 있다. 게임중독은 마약과 알코올과 같이 게임에 내재한 물질적 재료를 갖고 있지 않다. 게임중독의 본질적인 원인은 가족, 교우관계, 학교 폭력과 같은 다른 사회적 요인에 있다. 자기조절 장애의 원인을 게임 그 자체에 돌리는 것은 모든 게임 이용자들을 중독자로 인정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신의학계에서도 게임의 중독이 복합적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심각한 중독의 상태에 빠지도록 게임을 장시간 이용하는 것은 대체로 게임이용자에 대한 가족의 외면, 사회적 돌봄의 부재, 놀이문화의 획일성에서 비롯된다. 게임 중독의 해결이 단순히 법제정을 통한 국가관리와 치료만으로 될 수 없는 이유는 게임의 중독에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게임의 중독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하다. 보건의료계나 정신의학계가 주장하는 지나친 중독공포증 담론만으로는 게임에 대한 중독예방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게임의 중독현상들을 문화적, 교육적 방법으로 해소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대안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게임은 중독문제로만 한정할 수 없는 문화적, 교육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과도한 게임중독은 바로 문화적, 교육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을 중독의 문제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게임의 문화적, 교육적 가치를 외면한다. 게임의 문화적, 교육적 가치들은 이미 많은 연구와 조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외국에서는 게임교육을 초중등학교의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고 있고, 국내에서는 게임을 통한 문화예술교육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게임의 문화적, 교육적 가치는 게임의 중독문제보다 우선하는 근본적인 가치이다. 게임중독을 규제중심으로 예방 관리하는 방식보다는 자율적인 방법을 통해 해소하는 방식이 더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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