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7시 경기 오산시 서랑저수지 인근 도로 변 노지에서 희미한 랜턴 불빛이 반짝였다. 높은 건물은커녕 주택 하나 없어 사위가 어둠에 싸인 공간에 불을 밝힌 건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는 공우진(37ㆍ경기 화성시 봉담읍)씨였다.
한 달에 한번 꼴로 '나 홀로 캠핑'에 나선다는 공씨의 장비는 1인용 텐트에 조그만 테이블과 접이식 의자, 휴대용 가스레인지 하나가 전부. 이날도 텐트에서 3분 카레와 즉석밥을 물에 데워 저녁을 때운 뒤 스마트폰에 연결한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 놓고 커피향을 음미했다. 공씨는 "아내와 두 딸에게 양해를 구한 뒤 혼자 또는 친구와 둘이 호젓함을 만끽한다"며 "이런 캠핑은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데다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텐트가 다닥다닥 붙어선 캠핑장에서 왁자지껄하게 굽고 마셔대는 전형을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으로 캠핑문화가 바뀌고 있다. 12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나 홀로 캠핑' 카페에 2,000명이 넘는 회원이 등록돼 있는 등 저변이 확대 중이고, 아웃도어 업체들은 초경량 1인용 텐트나 1인용 식기세트 등 관련 장비를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혼자 떠나는 중장년 남성들의 캠핑은 외국의 백패킹(1박 이상 야영하는 등짐여행)이 국내에 알려진 2000년대 말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말에 예약하기 어렵고 혼잡하기만 한 캠핑장을 철저히 지양한다. 장비가 워낙 단출해 경험이 쌓이면 텐트 치고 침낭 깔고 식사 준비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정도면 충분하다. 자신의 행선지를 사전에 가족 등 여러 사람에게 자세히 알리고 위성항법장치(GPS) 기능이 되는 스마트폰을 챙기는 것은 필수다.
흥미로운 것은 변화의 중심에 있는 것이 중장년 남성이라는 점이다. '나 홀로 캠핑' 카페 운영자 노진수씨는 "회원 대다수가 가족 캠핑을 하다 넘어온 사람들이고, 10명 중 약 8명은 중장년 남성"이라며 "외국에서는 젊은이들의 문화여도 우리나라에서는 40대가 나 홀로 캠핑의 주류"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트렌드는 역설적으로 중장년 남성들이 짊어진 무거운 짐을 반영하고 있다. 가족을 두고 혼자 캠핑에 나서는 이유에 대해 "돈 버느라 치이고 아이 키우느라 잃어버린 나만의 시간을 찾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서울 강남에서 디자인회사를 운영하는 신용승(38)씨는 "20대에는 놀 데도 많았고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게 좋았지만 이제는 조용한 자연 속에서 혼자 하룻밤을 보내는 자체가 힐링"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머리가 커 버린 자녀들이 따라 나서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나 홀로 캠핑을 택하는 이들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구에 거주하는 40대 회사원 김모씨는 "아내나 애들을 억지로 데리고 갈 수는 없어 혼자 캠핑하는 친구들이 꽤 된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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