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영
변호사·서강대 로스쿨 겸임교수
'국민의 법감정'이라는 말이 있다. 이성의 총아인 '법'과 그 반대말인 '감정'이 합쳐진 '법감정'이란 말의 정확한 의미는 또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헌법 위에 국민감정법이 있다'는 말까지 나온 걸 보면 이 용어가 꽤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우리 국민이 '법감정'을 발휘하여 실제 사건의 판단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2008년 1월 처음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 땅에 재판제도가 생긴 이래 재판을 받는 객체로만 취급 받던 국민이 재판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고, 소위 엘리트들로 이루어져 지극히 폐쇄적으로 운영되어 오던 사법절차에까지 참여민주주의가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은 제도이다.
시행 6년째를 맞고 있는 올해 온갖 정치 이슈를 뚫고 난데 없이 국민참여재판이 관심의 중심에 있다.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시작된 관심이 나꼼수의 주진우 기자, 김어준씨와 안도현 시인에 대한 재판에서 제대로 불이 붙은 셈이다. 게다가 올 8월에는 국민참여재판에 출석요구를 받고도 출석하지 않은 부산 지역 배심원후보자들 20명에게 많게는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 터라 평생 법원 갈 일이 없을 모범 서민들에게도 국민참여재판은 이제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게 되었다.
지금 가장 큰 쟁점은 정치적 사건이나 공직선거법이나 명예훼손 사건과 같이 법리적으로 난해한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이다. 주로 나꼼수와 안도현 시인 사건의 평결 결과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제기하는 주장일 텐데 여러 가지 의문이 드는 주장이다.
우선 현행법의 국민참여재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모르는 주장인 듯싶다. 국민참여재판은 형사재판에 한정되고 그 중에서도 3명의 판사로 이루어진 합의부가 담당하는 사건이어야 한다. 시행 초기에는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 사건을 주로 대상으로 했지만 작년 7월 중범죄가 아니라도 형사합의부가 담당하는 일반 사건에도 확대 시행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형사합의부 사건이 대상은 아니고 우선 피고인이 희망의사를 표시해야 하고 법원도 이를 허가해야 비로소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까 현행법에 의해서도 어떤 사건이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든가 법리적으로 복잡해 법원이 일반인인 배심원에 의한 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면 얼마든지 국민참여재판을 제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나꼼수 사건과 안도현 시인 사건의 재판부도 그 사건을 국민참여재판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 깊이 숙고하였을 것이고, 그 사건이 갖는 의미와 파장, 법률적인 난이도, 그리고 평결과 다른 판결을 내릴 경우의 부담 등을 모두 고려해서 허가하였을 것이다. 재판은 법관의 영역이고 어떤 재판의 형식을 취할 것인가 역시 전적으로 법관이 판단할 영역이다.
작금의 비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해당 재판부가 그 사건들을 국민참여재판으로 하기로 결정할 당시에 제기되었어야 한다. 참여재판으로 진행한다는 결정 당시에는 아무 말 없던 사람들이 평결 결과가 나오자 그제서야 왈가왈부하는 것은 평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고백을 하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혹시 참여재판제도의 개선을 주장하는 이들이 이와 같은 재판부의 허가재량조차 허용하지 말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더 큰 문제다.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는 아예 국민참여재판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첫째 '정치적 사건'을 무엇을 기준으로 나눈다는 말인가. 정치인이 피고인인 사건이라면 정치인의 기준은 무엇인가, 시인이자 대학교수인 안도현씨는 정치인인가 아닌가, 정치적 발언을 한 대학생이 피고인이 된 사건이라면 정치적 사건인가 아닌가. 둘째 정치적 사건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의 가능성을 아예 봉쇄하자는 말은 사실 배심원을 못 믿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법관을 못 믿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렇게도 못 믿을 법관이 하는 정치적 재판의 판결은 어떻게 믿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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