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갚지 못한 외상 여관비 6만원이 마음속의 돌덩어리였는데 이를 해결하니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폐암선고를 받아 죽음을 앞둔 팔순의 노인이 경찰의 도움으로 40년 전의 빚을 갚았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이모(82) 할아버지는 40년 전 자신이 묵었던 충남 논산의 한 여관주인의 손자를 최근 만나 100만원을 건넸다. 당시 외상여관비 6만원에 이자 등을 합한 금액이었다. 그리고 40년간 자신을 괴롭혔던 마음의 짐도 함께 털어버렸다.
이 할아버지는 40여 년 전 논산의 '한남여관'에서 하숙하며 여관에서 2㎞ 떨어진 곳에서 기계부품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했다. 그러나 공장에서 불이 나 전 재산을 잃고 2개월 치 여관비 6만원조차 내지 못하고 쫓기듯 논산을 떠나야만 했다.
이 할아버지는 논산을 떠난 이후 재기에 성공했지만 외상여관비가 늘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는 갚아야지'하면서도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받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이 할아버지는 지난달 22일 가족과 함께 논산을 찾았다. 하지만 기억 속의 여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사람들에게 물어 보고 동사무소에도 가봤지만 누구도 여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 할아버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관 터 인근에 있는 논산경찰서 논산지구대를 찾았다.
이 할아버지는 당시 지구대에서 근무 중이던 송태의 경사에게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이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것은 당시 여관 인근에 극장이 있었다는 것과 여관 주인의 손자가 초등학생이었다는 것뿐이었다.
백방으로 여관 주인과 가족에 대해 수소문했지만 찾을 길이 없었던 송 경사는 닷새만에 여관 주인의 손자와 초등학교 동창인 주민을 찾아냈다. 송경사는 여관 주인은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고 손자가 서울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 할아버지에게 손자의 주소를 전달했다.
주소를 건네 받은 이 할아버지는 서울에 거주하는 손자를 만나 여관비에 이자까지 얹어서 40년 전의 빚을 갚았다. 이 할아버지는 "59세의 장년으로 성장한 손자와 손을 맞잡고 옛 생각을 하면서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며 송 경사에게 감사의 전화를 했다.
송경사는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40년 전 여관비를 갚기 위해 병마에 지친 몸을 이끌고 온 할아버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며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이 따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논산=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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