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으로 물회나 젓갈 만들어 먹으세요. 삶아서 초장에 찍어먹어도 졸깃하고 맛 있어요. 소라 삶은 물은 뒀다가 윗물만 떠서 마시면 이(위장)에 좋아요. 버릴 게 하나도 없지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얼굴만 빼놓고 검은 고무 옷으로 몸을 감싼 해녀 박복자(59)씨는 11일 서울 이마트 용산점 수산물코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제주 참소라를 먹는 법을 설명했다. 해녀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인 듯 신기한 듯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부터, 장 보러 나온 40~50대 주부들까지 박씨 앞엔 사람들로 내내 북적거렸다.
"먹는 방식을 알아야 잘 먹지궤(잘 먹잖아요). 서울 분들 먹는 방법을 모를 까봐 저가(제가) 이야기 헐려고(하려고) 직접 올라왔어요. 하나라도 더 팔아야 될 꺼 아닙니까."최대한 표준어로 설명하려는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 말이 길어지자 드문드문 구수한 제주 사투리가 귀에 들어왔다.
18살 때부터 40년 넘게 해녀로 살아온 박씨는 이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오전 8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육지를 밟아본 게 이번을 포함해 평생 3번째라고 했다.
그가 서울 대형마트 쇼핑객 앞에서 게 된 건 소라 때문이다. 지금은 한창 소라를 캐야 할 시기. 하지만 국내에서도 안 팔리고 수출마저 막막해지다 보니, 소라 판촉을 위해 바다를 뒤로하고 서울행을 택해야 했다.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올 초부터 6월까지 제주 참소라의 일본 수출액은 전년동기 대비 10%가량 감소, 163만1,000달러에 그쳤다. 엔화가치는 떨어지고, 원화가치는 오르면서 일본에서 참소라 값이 그만큼 올랐기 때문이다. 국내 참소라 수매가격(서귀포수협 기준)은 지난해 1kg 당 5,100원에서 4,400원으로 떨어졌는데, 엔저 탓에 일본 내 판매 가격은 오히려 8.5% 인상된 것이다.
박 씨는 "20년 전에는 ㎏당 8,000원도 더 받았는데 조금씩 떨어지더니 지금은 4,000원 대밖에는 되지 않는다. 하루 일당 4만원밖에 안 되니까 요즘 제주 해녀들은 바다에 안 나가고 밀감 따러 다닌다"고 말했다. 하기야 제주 비바리들이 물질로는 먹고 살 수 없는 상황, 벌이를 위해 바다 대신 밀감 밭으로 가야 하는 상황인데, 서울도심의 대형마트에서 하루 판촉사원이 된들 더 이상 이상할 게 뭐가 있을까.
소라의 수난, 해녀의 수난은 비단 환율과 수출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 소비도 뚝 끊겼는데, 바로 방사능 공포 때문이다. 방사능 오염에 대한 우려로 소비자들이 수산물을 외면하면서 소라는 수출뿐 아니라 내수판매도 꽉 막혔다.
박 씨의 상경을 주선한 건 이마트였다. 이마트는 어민생계 지원 차원에서 수산물 소비 촉진 행사를 벌이고 있는데, 제주 참소라는 20일까지 100g당 980원에 판매한다. 이마트 관계자는 "참소라의 경우 특히 국내 판로가 막혀 있어 수출이 줄자 어려움이 컸다"며 "지난해 처음으로 국내 판로를 열었고 이번에는 해녀지원금 형태로 100원을 더 얹어 소라를 사들이는 식으로 돕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방사능 공포가 몰고 온 수산물 판매침체는 소라 뿐만이 아니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으로 꼽히며 '금갈치'로 불렸던 갈치는 값이 폭락중이다. 지난달 갈치 상등급 5kg 한 상자의 가락시장 평균 도매가는 8만9,268원으로 전년대비 25%나 떨어졌고, 서귀포 수협의 제주갈치 역시 10kg 기준 9월 평균 판매가가 지난해보다 25% 하락했다.
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가 661명의 소비자패널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중 8명(77.5%)가 일본 방사능유출 위험이 집중 소개된 8월 이후 수산물 소비를 줄였다고 답했다.
김미자 서귀포수산업협동조합 유통가공사업단장은 "해녀가 죽으면 시신이 주로 일본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해류가 일본으로 흐른다는 뜻"이라며 "우리나라 앞바다는 방사능 오염우려가 없는 만큼 막연한 공포 때문에 수산물이 외면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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