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단과 판사의 판단이 달랐던) 안도현 시인의 국민참여재판을 바라보며 판사들은 국민적 상식을 반영해 향후 판례를 수정ㆍ보완하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으며, 그렇게 가야 한다는 분위기입니다."(서울고법 부장판사)
최근 논란이 된 공직선거법 사건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평결은 '감성평결'이라며 지역색을 덧칠하기에 바빴던 정치권과 달리, 법원 내부에서 "과연 기존 판례가 국민의 법 감정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를 고민하고 토론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공직선거법에서 공표를 금지한 후보자 또는 그 친인척에 대한 '허위사실'의 범위를 놓고 법원의 기존 판례와 배심원단의 시각에 상당한 차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박지만씨를 살인 사건 배후로 지목한 '나꼼수'와 지난해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안중근 의사 유묵을 소장하고 있을 가능성을 언급한 안 시인 모두 단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으면서 여러 증거들을 토대로 강하게 의혹을 제기했다. 기존 판례로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허위사실 공표로 볼 수 있지만, 배심원단은 "저 정도 의혹은 제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의심을 갖는 것이 왜 죄가 되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 공안사건 검사는 "선거법 대법원 판례는 (공표된 내용을) 사실로 믿을 만한 근거를 피고인이 제시하도록 하고 있고 여기서 상당성이 결여될 경우 법원은 유죄를 선고해 왔다"며 "그러나 배심원들은 일반적인 법 감정에 비춰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배심원들이 법리와 판례에 배치되는 평결을 내렸다"며 아예 선거 사범은 참여재판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 내부에서는 오히려 참여재판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상식'을 판례나 입법을 통해 합리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참여재판의 취지를 살리는 방안이라고 보고 있다.
나꼼수와 안 시인 사건에 대한 향후 항소심과 대법원 판결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존에도 배심원들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지만 이는 강도 등 강력 사건에서 증거들의 신빙성에 대한 것이어서 이번 사건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반면 배심원단의 평결이 대법원 판례에 반영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선거법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법관의 판단 차이는 당연한 일이며 그 간극은 입법적 고민으로 풀어야 한다"면서 "항소심과 대법원을 거치며 판례가 수정되거나 사실관계 인정의 기준이 달라진다면 법적 안정성 자체를 해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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