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 웹툰은 정해진 듯 영화화 수순을 밟는다. 유명 감독들도 질세라 웹툰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충무로 흥행술사 강우석 감독은 동명 웹툰을 밑그림 삼아 '이끼'에 이어 '전설의 주먹'을 연출했고, '만추'로 스크린에 낭만을 되살렸던 김태용 감독도 동명 웹툰에 뿌리를 둔 '신과 함께' 촬영에 들어갔다.
14일 개봉하는 '더 파이브'도 유행에 순응하듯 동명의 인기 웹툰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다. 스크린 밖에선 그리 유난한 것 없을 듯한 이 영화, 특별한 사연을 품고 있다. 웹툰 원작 작가가 메가폰까지 잡은 첫 영화다. 주인공은 정연식(46) 감독이다. 2000년대 초반 일간스포츠에 연재돼 화제를 모았던 만화 '또디'의 작가다. '더 파이브'는 인기 만화가라는 빛나는 수식을 애써 외면하며 암중 모색했던 정 감독이 9년 만에 일궈낸 성과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카메라 플래시처럼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어느 선배님이 판검사보다 영화감독 되기가 더 어렵다고 했는데 감독이 됐다. 얼떨떨하고 꿈만 같다"고 말했다.
'더 파이브'는 연쇄살인범에게 가정을 잃은 여인 은아(김선아)의 복수극을 뼈대로 삼았다.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는 은아는 유일한 재산이라 할 몸을 이용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인 복수를 시도한다. 각자 자신들의 가족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4명의 남녀가 의기투합해 은아를 도우며 이야기의 살을 붙여간다. 신체적 제약을 지닌 주인공과 저마다 다른 특기를 지닌 루저들의 결합은 서늘한 서스펜스와 더불어 뜨거운 드라마를 빚어낸다. 심장을 옥죄다가 콧등을 자극하는 후반부가 관객들을 매혹시킬 영화다.
당초 '더 파이브'의 출발은 웹툰이 아니라 영화였다(그의 또 다른 웹툰 '달빛 구두'도 시나리오로 시작됐다). 정 감독은 시나리오를 쓴 뒤 콘티(영화 촬영을 위한 일종의 그림 대본)를 만들다가 이를 웹툰으로 발전시켰다. "이왕 만들 콘티를 만화처럼 좀 더 명확히 그려보자"는 의도였다. 웹툰의 인기는 부수적인 수확이었던 셈이다. 웹툰에 클릭이 몰리자 "영화사 열 네 군데와 감독님 네 분이 찾아왔으나"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일년 넘게 취재해 쓴 시나리오니 제 자식을 맡기는 기분이라" 다른 감독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정 감독은 "웹툰을 그리며 시뮬레이션을 한 덕인지 촬영 현장에서 어떤 변동이 있어도 그리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복수를 향한 영화 속 은아의 집념은 정 감독의 영화를 향한 열정과 묘하게 포개진다. 잘나가는 만화가에서 무명의 감독 지망생으로 삶의 좌표를 바꾸면서 그는 "돈 되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만화하면서 집 사고 차 샀는데 영화하면서 집 팔고 차 팔게 된" 삶이었다. 그는 "세 차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때도 미친 듯이 매 번 한 편씩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했다. "오직 영화를 하겠다는 꿈을 안고 상경했고 한 번 사는 인생이니 끝까지 도전해보려 했다"고 말했다.
그의 삶은 만화가의 길에 들어서기 전부터 굴곡졌다. "영화를 할 수 있을까 해서 광고회사에 들어가 CF감독 생활을 하다가 후배에게 밀린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둔" 그는 "폐지 주워 풀빵 장사하려다 덜컥 만화공모전에 입상했다." 그의 인생 유전은 어쩌면 좀 더 나은 이야기꾼이 되기 위한 일종의 예행 연습이었던 듯. 그는 "'또디'를 연재할 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훈련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이야기 만드는 거예요. 나중에 영화감독으로 인기를 못 얻고 나이가 든다면 동화 작가를 하고 싶어요. (웹툰과 영화로) 그림도 배웠고 글도 배웠으니까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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