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희곡 은 그의 대표작 중 가장 대사가 많고 주인공 햄릿의 비중이 어떤 작품의 주요 캐릭터보다 크다. 때문에 햄릿을 연기하려면 남다른 각오가 필요하지만, 남자 배우라면 젊을 때 꼭 해보고 싶어하는 역이기도 하다.
나이 서른, 무대에 선 지 2년밖에 안 된 배우 박은석이 햄릿이 됐다. 성천모 각색ㆍ연출로 대학로예술극장 3관에서 23일까지 연장 공연 중이다. 이번 '햄릿'은 지난해 초연 때 제1회 셰익스피어 어워즈 젊은 연출가상을 받은 작품이다. 올해 예술의전당 공연에 이어 대학로로 옮겨왔다.
잘생긴 외모와 신인답지 않은 성숙한 연기력 덕분에 박은석은 여성 팬들을 몰고 다닌다. 대학로예술극장으로 온 뒤 그를 더 가까이 보고 싶어하는 팬들이 연극 관련 게시판에 '오른쪽 통로 E열에 앉으면 좋다'는 등의 글을 심심치 않게 올린다. 최근엔 중국 관광객들도 그를 알아보고 찾는다.
연기를 하고 싶어 미국 영주권자임에도 자원 입대해 한국어를 공부할 정도로 억척이던 그는 연극'옥탑방 고양이', '트루 웨스트' 등을 거치며 대학로의 실력 있는 연기자로 주목 받았다. 햄릿 역은 쉽지 않은 도전이면서 동시에 기회였다.
"혼자 세상과 맞서는 햄릿은 두 어깨에 모든 짐을 짊어진 비운의 남자입니다. 서른다섯에서 마흔 사이에 햄릿을 연기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는데 이렇게 일찍 하게 돼 부담이 컸어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정신 상태인 햄릿이라는 역할을 너무 논리적으로 받아들이려 해 어려움도 있었어요."
이번 '햄릿'은 원작의 극중극을 전면에 끌어내 풀어가는 독특한 형식이다. 독살당한 부왕의 혼령을 만난 뒤 복수를 다짐하는 햄릿이 숙부와 어머니의 범죄를 암시하는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원작의 이야기를 전한다. 배우 3명(햄릿과 햄릿의 두 친구)이 원작의 여러 캐릭터를 나눠 맡으면서 극중극으로 모든 내용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연기하기가 녹록지 않다.
원작과 달리 이 무대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연극을 해보고 그대로 했다간 끔찍한 비극이 빚어질 것이라 깨달은 햄릿은 복수의 칼을 거둔다. "햄릿이 극중극에서 숙부가 되어보기도 하는 과정을 통해 심리 치료가 된 셈이죠. 사람들이 이 연극은 햄릿의 '힐링캠프' 같다는 말을 할 정도에요."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조영호기자 you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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