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 부품에 이어 전차와 자주포, 헬기 등 우리 군의 핵심 무기체계와 군용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이나 원자재의 시험성적서들도 대거 위조된 사실이 드러났다.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은 최근 3년 간 납품된 13만6,844가지의 군수품을 대상으로 6월부터 지난달까지 군납업체가 제출한 공인시험성적서를 전수 조사한 결과, 34개 업체가 125건의 시험성적서를 위ㆍ변조한 것으로 밝혀져 검찰에 고발했다고 11일 밝혔다.
기품원에 따르면 시험성적서가 조작된 품목 중에는 구난전차나 장갑차(K200A1), 자주포(K-9), 기동헬기 '수리온' 등 한국군의 주력 체계장비에 쓰이는 부품도 상당수 포함됐다. 손상된 전차의 구조ㆍ정비가 주요 기능인 구난전차의 경우 협력업체 3곳이 브래킷(지지 구조대)과 U자형 볼트, 판 등 전차용 부품을 공급하면서 73건의 시험성적서를 허위 작성하거나 거짓으로 꾸몄다. 발행되지도 않은 가짜 성적서를 만드는가 하면 성분의 함량을 규격에 맞도록 끌어올렸다. K-9 부품 납품업체 3곳도 기준에 미달하는 경도나 인장 강도를 속이는 등 차량걸쇠와 밀대, 절연판 등의 허위 시험성적서 13건을 써냈다. 국내 기술로 자체 개발된 수리온의 경우에도 납품업체 2곳이 와이퍼 조립체와 보조동력장치(APU) 시동모터 등 원자재의 성분 함량을 속이는 수법으로 3건의 시험성적서를 조작했다. 군용 무기ㆍ장비 부품 공급업체의 시험성적서 위ㆍ변조 사례는 23개 업체, 103건에 달했다.
이처럼 방대한 규모의 납품 비리는 미비한 제도와 부실한 감독 탓이다. 여태껏 핵심 군수품에 대해서는 기품원이 직접 품질 관리를 수행해온 반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비(非)핵심 품목의 경우 부품ㆍ원자재 납품업체의 관리를 계약업체에 맡기고 공인시험기관이 발행한 성적서를 제출토록 해왔다. 최창곤 기품원장은 "지난 30년 동안 시험성적서 위ㆍ변조 여부를 검증한 적이 없다"며 "품질관리 위임 품목에서 발생한 이번 사례는 제도상 허점을 악용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기품원은 이번에 적발된 시험성적서 조작이 비핵심 품목에만 해당돼 군용품 품질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실제 지금껏 위ㆍ변조 부품들 탓에 장비 가동이 중단되거나, 장비를 운용하는 군이 불만을 제기한 적은 없다고 기품원은 설명했다.
그러나 기품원은 비정상적으로 납품된 품목을 군과 협조해 장비 운용에 차질이 없는 선에서 순차적으로 전량 회수해 정상 제품으로 교체키로 했다. 아울러 기품원은 적발된 업체를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하고 입찰 참여 제한 등 제재도 가할 예정이다. 최 원장은 "주계약업체도 (성적서를 위ㆍ변조한) 납품업체를 관리할 책임이 있다"며 "계약상 책임이 있는지 따져 제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보완도 추진된다. 시험분석 의뢰를 업체 주도에서 기품원 주도로 변경해 업체와 시험기관 간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는 한편 납품업체가 제출한 성적서 검증을 위해 시험기관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필요하면 규정도 바꾼다는 게 기품원 방침이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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