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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1월 12일] 시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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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1월 12일] 시간의 흔적

입력
2013.11.1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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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천구'라 불린다. 말마따나 둥글어 보인다. 물론 실제로 둥글지 않다는 것쯤 누구나 안다. 별들이 둥근 천장에 붙어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다만 아는 것과는 별도로, 하늘이 둥글게 보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별자리를 이루는 별들이 실제로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지식'을 쌓는다 한들, 북두칠성을 이어 국자 모양을 만들어보는 버릇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북두칠성을 이루는 가장 밝은 별 두베는 지구에서 124광년 거리에 있다. 손잡이 부분의 미자르는 78광년 거리에 있다. 그러니 각각 124년 전과 78년 전의 흔적을 이제야 우리가 보고 있다는 뜻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을 한눈에 볼 뿐만이 아니라, 지구 시간으로 1889년과 1935년의 어떤 순간을 동시에 접하고 있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무려 50억 광년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퀘이사'라 불리는 천체들을 관측하기도 한단다. 지구 나이가 대략 46억 년이니 지구가 존재하기도 전의 흔적이다. 밤하늘이 바로 타임머신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누구누구는 죽어서 별이 됐대, 라는 식의 옛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기만 한 건 아닌 것 같다. 가령 10년 전에 출발하여 이제야 우리에게 도착한 10광년 거리의 빛은, 10년 전의 죽음이기도 할 테니까. 별을 보며 죽은 이를 그리는 시선. 어쩌면 이차원의 까만 곡면에서 사차원의 시공을 읽어내기 위해, 인간의 궁핍한 감각과 언어가 발휘한 소박한 지혜일지도 모른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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