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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1월 11일] "학교 안 다니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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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1월 11일] "학교 안 다니면 안 돼요?"

입력
2013.11.1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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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학교 안 다니면 안 돼요?" 고등학교에 갓 들어간 아이가 저 질문을 던진 게 3년쯤 전이다. 제 할 일 제법 잘 알아서 하던, 오히려 너무 순응적인가 싶던 아이였기에 아이의 저 말은 일상을 뒤흔드는 충격이었다. 태연함을 가장해야 했으나 당혹감을 감추기도 힘들었다. 띄엄띄엄 아이와 대화하며 자율적 인간형과 선택의 용기를 추어온 일들이 족쇄처럼 질책처럼 환기됐다.

중3 때부터 생각해온 일이다, 학교와 잘 안 맞다, 진학하고 보니 더 심하다…. 무겁게 앉아만 있는 내 눈치가 보였던지 아이는 그간 겪은 뒤숭숭한 학교 경험들로 말을 늘였고, 묻지도 않았는데 "대학은 가겠다"고, "혼자 할 수 있다"고도 했다. 미안해 하던 아이 얼굴에는 점차 원망과 실망의 기운이 스몄다. 틈만 나면 부추기던 선택과 자율은 그냥 말이었냐는 거였다. 우리는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는 선에서 대화를 미봉했지만, 나는 아이의 저 청유형 질문이 완곡한 통고인 것 같아 몇 날 잠을 설쳐야 했다. 어차피 선택은 아이 몫. 나는 선택 이후의 짐을 일부나마 덜어 질 채비를 해야 했다. 혹시 잘못되지 않을까? 혼자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가? 수시로 들이닥칠 고독과 불안은? 또 열패감은? 아니 당장 하루하루를 어디서? 짐작되는, 또 예상조차 못할 짐들이 나는 두려웠다.

당시 내가 원한 게 내 아이와 같은 청소년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었다. 학교를 대신해 조언하고 격려하고, 학교에서 배워야 할 다양한 공동체적 가치들을 일깨워줄 수 있는 전문가가, 공간이, 공동체적 애정과 관심이 절실했다. 하지만 어떤 생각이었는지 아이는 자주 침울해 하면서도 학교를 계속 다녔고, 나는 행여나 '상처'가 덧날까 봐 노심초사해야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아슬아슬 잊혀가던 그 일이 다시 떠오른 건 며칠 전 한 조간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을 본 뒤부터였다. 학교 아이들이 수업 받고 있을 그 시간에, 학교 밖 아이들은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새누리당 김희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교밖 학업중단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안'통과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3월 배포된 법안 보도자료를 서둘러 찾아 읽었다. 보도자료는 '학업중단 청소년 범죄율' 표와 함께 '학교 밖 학업중단 청소년들의 탈선이 일반 학생의 23배가 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나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법안의 골자- 학업복귀 프로그램 실시, 지원센터 지정ㆍ운영- 는 대부분 지자체 조례나 청소년복지지원법 등으로 이미 시행 중인 거였고, 교육부의 '학업중단 청소년 종합대책'과도 상당 부분 포개지는 내용이었다. 정작 핵심은 맨 뒤에 놓인 '학교밖 청소년 정보시스템 구축ㆍ운영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이었다. 전담 기구를 만들어 '학업 중단' 청소년의 개인정보를 통합 관리하겠다는 것. 지원 예산은 언급도 없고, 기관 설립 운영을 근거로 산정된 예산만 언급돼 있었다. 한 마디로 그건 '지원법'이 아니라 '관리 통제법'이었다. 판옵티콘의 발상, 전자발찌의 발상과 얼마나 다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국회 법안심사소위는 19일 이 법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아이들의 시위는 그러니까,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태 같은 큰 현안에만 쏠려 있는 세상의 관심을, 그렇게라도 자신들에게 끌어당겨 보고자 했던 거였다.

단언컨대 저 법안에는, 아니 학생을 어떻게든 학교에 붙잡아두거나 다시 끌어들이는 데만 혈안인 교육부 종합대책 어디에도,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진지한 배려는 없다. 정말 지원하려거든 구색용 국회 공청회로 그칠 게 아니라, 범죄통계를 앞세워 사회적 비용집단으로 낙인부터 찍을 게 아니라, 그들이 어찌 지내는지 뭘 원하는지 충분히 듣고 살피는 게 먼저다.

내가 느낀 모욕감은 어쩌면 사소하다. '지원'이라는 저 국회의 위선에, 1인당 공교육 예산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예산으로 자신의 삶을 외롭게 개척하고 있는 저 아이들이 느낄 모욕감을 나는 짐작도 못 하겠다.

최윤필 기획취재부장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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