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증권이 그 동안 거부해오던 동양그룹 회사채·기업어음(CP) 판매 과정을 담은 녹취록을 4일부터 공개하기 시작한 데 이어 이번엔 '피해자 명단'공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피해자 측은 최대한 많은 이들을 규합해 기업회생절차와 소송 과정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명단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동양증권 측은 이번에도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공개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양증권의 계열사 회사채 기업어음(CP)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총 1만8,400여건의 분쟁조정 신청이 접수됐다. 인원으로는 1만8,500여명으로 전체 피해자로 알려진 4만9,000여명의 절반 수준이다.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나머지 2만여 명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도 피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윤일 대책본부 운영위원은 "동양이 법정관리를 결정한 뒤 피해자들은 동양증권으로부터 제대로 된 공지를 한 적이 한번도 없다"며 "아직도 동양 계열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사실이나 자신이 투자한 상품이 동양과 관련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비대위가 피해자 숫자와 금액을 많이 규합할수록 피해 구제에 유리하다는 점이다.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동양 계열사들의 회생 계획안 의결 절차에서 발언권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법정관리가 개시된 동양그룹 5개 계열사의 경우 회생 계획안에 대한 인가 절차를 거치는데 피해자들이 회생 채권 금액의 3분의2(66.7%) 이상을 모아 공동대응에 나선다면 사측이 만든 회생 계획안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즉 회생 채권금액의 66.7% 이상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힘을 합치면 향후 배당기준 등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동양증권 측에 채권소유자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비대위 측 관계자는 "동양증권 지점마다 별도 테이블을 설치하고 피해자들을 일일이 찾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피해자 규합에 어려움이 많다"며 "동양증권 측이 피해자 이름과 전화번호만이라도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양증권은 이에 대해 "개인의 개인정보와 투자정보를 특정인에게 제공하는 행위는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맞서고 있다.
피해자들은 녹취록 공개 때와 마찬가지로 금융당국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감원이 동양증권 측으로부터 명단을 넘겨 받아 직접 피해자에게 연락을 하는 등의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안수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적인 검토를 해야 하겠지만 금감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 신상정보 공개여부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현실적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금감원 역시 동양그룹 투자 피해자의 명단을 받아 직접 서신을 보내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이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법무법인 한결의 김성진 변호사는 "금감원이 금융 피해자들에게 비대위 참여 의사를 묻는 행위는 감독당국이 갖춰야 할 중립성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로텍 이헌욱 변호사는 "과거 LIG그룹 사태 등 유사한 사건 때도 명단을 확보하려 했지만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이유로 쉽지 않았다"며 "관련 금융사고가 잇따르는 만큼 금융당국과 법원이 과거 소극적인 개인정보 보호를 넘어 좀더 적극적으로 금융소비자 보호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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