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원작으로 한 연극은 관객이 속한 시대와 관계없이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일관되게 전달되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와 더불어 관객은 고전이 갖는 통시대적인 의미를 느낄 수 있어 즐겁다.
1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당통의 죽음'은 독일의 문호 게오르크 뷔히너의 대표작인 동명의 희곡을 무대로 올린 것이다. 이 고전은 프랑스혁명을 소재로 하지만 객석에선 1987년이나, 박정희 군사정권의 몰락, 12ㆍ12사태를 기억해낸다. 작품이 쓰인 200여 년 전의 심상과 개념이 멀리 21세기의 한국에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해석돼 의미가 있다.
루마니아 연출가 가보 톰파가 선보이는 현대적인 무대 스타일과 소리꾼 이자람이 극의 화자 겸 군중 역할의 배우로 활약하는 것이 돋보였다. 프랑스혁명 직후 공화정을 이끈 온건파 당통과 강경파 로베스피에르 역을 맡은 박지일과 윤상화의 선 굵은 연기는 자칫 이국적일 이야기를 흔들리지 않게 묶어냈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 일파 간의 정쟁을 그린 작품은 무대를 현대의 어느 날로 꾸몄다. 배우들은 스마트폰을 쓰고, 마이크 앞에서 토론하고, 세련된 슈트와 타이 차림으로 정치인을 연기한다. 투명 아크릴판 구조물, 무대 아래위로 배우를 실어 나르며 역동적 연기를 만드는 엘리베이터와 자동문은 지루할 수 있는 정치극에 활력을 넣는다. 상대 배우를 직접 스마트폰으로 찍어 영상으로 스크린에 올리는 장면, 무대 뒤를 오가는 목 없는 귀신 모습 등은 영화적인 상상을 일으킨다. 장면을 짧게 끊어가는 연출도 현대적이라 영상세대의 호감을 산다.
앙시앵 레짐(혁명 전 제도와 체제) 혁파가 민중의 삶을 얼마나 개선했는지, 수많은 희생을 낳은 혁명은 쓸데없는 짓은 아니었는지, 두 주인공은 끝없이 논쟁한다. "공포정치야말로 도덕이며 공화정의 핵심"이라는 로베스피에르와 "남들을 단두대로 보내느니 내 목이 잘리는 게 낫다"며 공포정치를 거두라는 당통. 과연 애국과 민중이라는 이름을 앞세운 많은 혁명과 정쟁이 역사를 한 걸음 더 딛게 했는지 자문하게 한다.
극을 닫는 역할은 온전히 이자람이 맡았다. 당통과 그의 동료 카미유(염순식)가 단두대 이슬로 사라진 후 목숨을 끊으려는 이들의 아내와 연인에게서 칼을 뺏고, 앞서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의 영혼을 위한 연가를 부른다. 이자람의 '억척가'를 듣고 원작에 없는 역할까지 만들어 캐스팅한 톰파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로베스피에르도 당통의 죽음 1년 후 같은 방식으로 목을 잃는 운명이 직설적으로 전달되지 않아 관객은 자칫 원작의 큰 메시지를 놓칠지 모른다. 엄청난 양의 대사를 소화하기 위해서인지 배우들의 호흡이 전체적으로 빨랐다. 연기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는 느낌도 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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