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흥행돌풍을 방송가에선 '디테일의 승리'라고 말한다. TV 화면에 1994년을 제대로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방송된 8화 평균시청률이 7.1%(닐슨 코리아), 순간 최고시청률은 8.6%를 기록한 것은 아련한 시대적 공감대가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는 증거다.
당시 신촌 하숙집 분위기뿐만 아니라 성나정(고아라 분)과 쓰레기(정우 분), 삼천포(김성균 분), 해태(손호준 분), 칠봉이(유연석 분) 등 주인공이 사용하는 삐삐, 화장품, 자동차, 공중전화 등 20년 전 우리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들 소품을 보노라면 "대체 어디서 구했을까?"라는 질문이 절로 떠오른다.
'응답하라 1994'의 미술과 소품을 담당하는 서명혜(40) 미술감독이 그 숨은 주역이다. 그는 1997년 영화 '접속'을 시작으로 '미술관 옆 동물원', '몽정기', '비스티보이즈', '여자 정혜' 등의 소품을 담당하다 올 초 tvN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으로 방송계와 연을 맺었다.
1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사무실에서 만난 서 감독은 테이블에 캔 음료를 잔뜩 올려놓고 기자를 맞았다. 인터뷰를 위해 준비된 음료수인 줄 알았는데 '가짜' 음료수였다. 서 감독은 5명의 팀원과 함께 '응답하라 1994'에 나오는 거의 모든 물건을 손수 만든다. '쌕쌕이' '마하 세븐' '밀키스' '맥콜' 등 캔 음료의 겉포장도 일일이 그래픽으로 만들어 붙였다. 성나정과 쓰레기가 하숙집 거실이나 MT에 가서 즐겨 마셨던 'OB맥주'도 마찬가지. 거리 장면에서 전봇대나 벽면에 붙은 가수 듀스의 콘서트 포스터, 편의점 배경이 되는 담뱃갑, 약국 진열대를 채운 약 상자와 봉투 등도 그가 제작했다. 이런 작업하느라 24시간이 모자라 하루 두 시간도 눈을 붙이기 힘들 정도란다.
"당시의 제품을 찾는 일은 너무도 힘든 작업이에요. 영화는 시나리오가 미리 나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준비할 시간이 있어요. 하지만 드라마는 대본이 그때그때 나와서 미리 준비할 겨를이 없죠. (캔 음료수를 들어 보이며) 이렇게 일일이 만들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인지 사무실 한 쪽에는 초대형 프린터가 턱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예 대여해 과자나 음료, 담뱃갑 등의 표지를 직접 그려 출력하고 있다. 표지 하나에 2~3일 걸리던 작업이 지금은 반나절이면 족하다. 당시 신문은 소중한 자료집이라고.
그러면 방송에 나왔던 컴퓨터나 전화기 등은 어떻게 구했을까. 3화에서 삼천포가 채팅했던 장면에 쓰였던 컴퓨터는 '하이텔 단말기'. 서 감독의 팀원인 강동훈 팀장은 "PC통신용 단말기인데 극 중에서 컴퓨터공학과 학생인 삼천포 등이 꼭 필요한 소품이라 컴퓨터수집가를 만나 25만원에 샀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중국시장과 중고 전자제품 상점 등을 돌아다니다 컴퓨터수집가 모임까지 찾아 간 것. 추억의 물건인 '피아노 전화기'도 해외에서 4만원 정도에 사서 들여왔다.
나정의 방에 붙은 농구선수 이상민의 포스터도 서 감독이 전북 군산의 헌책방에서 찾아낸 '보물'이다. 1화에서 삼천포가 상경하는 장면에 나온 1호선 시청역은 서 감독의 혼이 담겼다. 인천선의 한 역을 배경으로, 당시 빨간색로 표시된 1호선의 느낌을 살렸다. 개찰구와 주황색 정액제 지하철 패스권도 직접 만들었다. 특히 6개의 지하철 개찰구는 서 감독과 팀원이 시트지를 붙여 만든 것으로, 개당 80만원 가량이라고 귀띔했다. 정액권이 개찰구를 통과해 튀어나오는 장면은 컴퓨터그래픽(CG)작업을 했다고. 요새 서 감독은 하숙집에 등장하는 요리까지 손수 해낸다. "푸드스타일리스트를 섭외하기도 하지만, 스케줄 조절이 쉽지 않아 제가 그냥 해요. 오징어 볶음이나 된장찌개에서 심지어 배달음식으로 나오는 짜장면, 짬뽕까지요. 힘들어도 마냥 즐거운 건 천직이기 때문이겠죠."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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