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슈퍼 태풍 하이옌(Haiyan)이 할퀴고 간 필리핀 중남부지역 피해현장은 세바스찬 로즈 스탐파 유엔 재해조사단장의 말처럼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부분의 주택과 건물이 폭격을 맞은 듯 지붕이 뜯겨져 날아갔고, 시내 도로주변은 홍수에 떠내려온 수백여구의 시신들과 쓰러진 나무, 차량 등이 한데 뒤엉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고 AP통신, AFP통신 등이 전했다. 마누엘 로하스 필리핀 내무장관은 "끔찍한 비극에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다"며 처참한 현지 상황을 전했다. 10일(현지시간) 현재 태풍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레이테섬의 주도인 타클로반 1개 도시에서만 1만명이 숨졌으며, 인근 사마르섬에서도 사망ㆍ실종자가 2,300명에 달하는 등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규모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이옌 사태는 올해 발생한 최악의 재난 피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하이옌이 이처럼 필리핀을 단숨에 집어삼킬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엄청난 강풍 때문이다. 당초 필리핀 기상당국은 8일 하이옌이 사마르섬에 첫 상륙할 당시 태풍 중심부의 순간 최대풍속을 시속 275㎞로 예측했다. 하지만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 관측에 따르면 하이옌은 예상과 달리 순간 최대풍속이 무려 379㎞까지 치솟으며 태풍 관측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지금까지 관측된 가장 강력한 태풍은 1969년 미국 미시시피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밀(304㎞)이었다.
5~6m가 넘는 집채만한 폭풍 해일이 동시에 덮친 것도 인명피해를 더욱 키웠다는 분석이다. AP통신은 현지 관계자를 인용해 "바다가 타클로반을 집어 삼켰다"면서 "폭풍 해일이 일본의 쓰나미와 같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발생한 쓰나미로 1만8,000명 이상이 숨진 바 있다.
필리핀을 돕기 위해 국제사회가 앞다퉈 구호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필리핀에서 발생한 대규모 인명손실과 엄청난 국가 인프라 피해로 인해 슬프다"고 애도했다. 유엔을 비롯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ㆍUNICEF)과 세계식량기구(WFP), 유럽연합(EU)도 마실 물과 의약품, 위생용품을 피해지역에 공급하고 있다. 미국은 헬리콥터와 항공기 등 인양ㆍ수송장비 등을, 러시아는 구조대와 이동식 병원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호주와 뉴질랜드는 각각 36만6,000달러, 12만4,000달러씩 구호자금을 필리핀에 전달했다.
한편 필리핀을 통과한 하이옌이 11일 베트남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동남아시아 주변국들도 비상이 걸렸다. 베트남 소리방송(VOV)은 "하이옌이 중부 꽝응아이성에서 약 200㎞ 떨어진 해상에서 관측됐고, 현재 북중부와 북부해안 지역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하이옌이 남중국해를 지나면서 시속 130~160㎞로 세력이 다소 약화되고 있지만 베트남 수도 하노이 등 북부지역에 최고 300㎜의 폭우를 뿌릴 전망이다. 베트남 정부는 60만명을 대피시키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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