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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작 지상중계] 조경란 '밤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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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작 지상중계] 조경란 '밤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입력
2013.11.1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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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장편 등

'보이지 않는데도 이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 저는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종교만 그럴까요?…근대 줄기를 날카로운 V자 모양으로 도려내면서 저는 도리질 쳤습니다.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아름다움, 혹은 사랑 같은 것이 될 수는 없을까요? 그래요, 누군가에게는 죽음 같은 것이. 그런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이 우리를 끌고 가는 것 아닌가요?'

조경란의 단편 '밤을 기다리는 사람에게'에는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유년의 아픔을 간직한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이 등장한다.

진교라는 남성은 태어나자마자 복지센터 앞에 버려졌다. 그를 거두어준 아버지와도 일찌감치 헤어져 어찌어찌 일본 호텔의 요리사가 되었다. 소설에서 내내 독백하는 일본 여성 미호는 열세 살 때 전차에서, 이어 남자화장실까지 끌려가 성폭행당한 과거를 짊어지고 있다. 그 충격으로 심근경색이 심해진 아버지는 알지 못할 종교에 빠져들었다가 세상을 떠났다.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며 두부를 만들어 팔던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생계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를 마냥 돌볼 처지가 아니었다.

그 음식점에서 주인집 손녀와 손님으로 만난 두 사람에게 사랑이 움텄다. 하지만 사랑조차 그들을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해주지는 못했다. 아내와 함께 한국행을 택한 진교는 양아버지가 사는 서귀포가 아닌 P시에 정착한 뒤 일도 그만둔 채 잠에만 빠져든다. 그가 요리사 진교로 되돌아온 것은 2년 뒤 몸을 추슬러 펜션 운영하는 아버지 곁으로 간 뒤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결국 진교는 바닷가 바위에서 자살하고 만다.

소설은 남편이 자살한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는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쓴 편지 형식이다. 아물기 힘든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의 슬픔에 젖어 있는 내면, 아버지도 심지어 사랑하는 아내도, 도무지 옆에 있는 누군가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그들의 운명은 마냥 우울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려던 것은 그런 비극의 초상이 결코 아닌 것 같다. 미호는 '그때 무덥던 여름날 복지센터 앞 화단에 버려진 검은 비닐봉지 속의 그 죽은 듯 보이던 신생아'를 데리고 와 주어 고맙다며 '아버지가 모르는 진교씨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위해' 편지를 쓴다고 말한다. 주위에서 내내 불안한 눈으로 바라봤을 그 버려진 아이가 '훗날 저 같은 사람에게도 한 신비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말았지만 그를 만났던 것이 '제가 믿고 저를 이끄는 것을 다시 한 번 따라가 볼까' 하는 용기를 준 것까지.

모호한 듯 보이면서도 잘 짜여 있는 인물이나 상황 설정, 감수성 풍부한 묘사는 물론이고 작가의 장기와도 같은 요리, 음식 이야기가 적지 않게 등장해 '메이드 인 조경란'을 실감케 하는 단편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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