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5일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글로벌 안보포럼 기조연설에서 미국의 쇠퇴가 허위 관념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 쇠퇴라는 허위 관념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며 "미국 쇠퇴는 잘못된 말이고, 미국은 세계 유일의 글로벌 리더"라고 했다. 미국 쇠퇴가 기정사실로 굳어진 마당에 헤이글 장관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주긴 어렵다. 많이 양보해서 군사력에선 미국이 쇠퇴하지 않을 것이란 다짐으로 볼 수는 있다. 주목할 것은 그의 발언이 최근 미국 쇠퇴, 미국 위기가 잘못된 인식이란 주장이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 유행한 미국 쇠퇴론을 지나 미국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는 현상 중 하나일까 싶다.
긴 시간의 잣대로 보면 미국 쇠퇴는 미국 건국 이래 세계의 담론거리였다. 유럽에선 신세계 미국의 날씨가 건강에 해롭다거나, 조직 활력을 잃었다는 식의 위기론도 전파됐다. 미국의 도전자가 처음 등장한 지난 60년은 특히 위기론이 팽배했다. 1960년대는 소련, 70년대는 유럽, 80년대는 일본이 미국 위기론을 부추긴 배경이었다. 그러나 미국을 묻어버리겠다고 큰 소리 치던 소련은 해체됐고, 유럽과 일본은 어제의 슈퍼스타로 남았다. 지금 미국 위기론의 실체 뒤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이 미국의 파워를 넘어설 것이란 논리는 미국의 대표적 금융기관인 골드만 삭스가 주도했다. 2003년 골드만 삭스의 이코노미스트들은 2050년 중국 경제 규모가 미국보다 9조 달러 앞서 세계 넘버 원이 될 것이란 보고서를 냈다. 이후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시점을 2025년, 2020년으로 앞당기는 경쟁이 예측가들 사이에 벌어졌다. 2040년 중국 경제규모가 123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호언까지 나왔다. 멈출 줄 모르는 중국의 성장은 이런 예상을 증명하며, 미국 쇠퇴를 사실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독일 시사주간지 디차이트의 편집장 조셉 조페는 미국 쇠퇴론이 냉정한 눈으로 진단한 게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는 최근 펴낸 '미국 쇠퇴의 신화'에서 중국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의 경제성장이 불가피하게 국민들의 민주화 욕구를 분출시키면서 공산당 지배력이 약해지고 성장도 늦어지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 지배력을 계속 유지하려면 중국 공산당은 제2의 톈안먼 사태를 감수하고 경제를 희생시켜야 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의 경고를 보면, 중국이 이대로 가다가는 현재 미국의 8분의 1 수준인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30년이 돼도 4분의 1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헤리티지 재단의 킴 홈즈 전 국무부 차관보는 외부의 도전보다 미국 안으로 눈을 돌려 위기론에 반기를 든다. 도덕과 자유, 문화의 다양성 등 미국의 DNA를 재결합하면 위대함이 복원되며, 쇠퇴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란 것이다.
미국 쇠퇴의 반론들을 따라가다 보면 당연시 되던 미국 위기 논리에 구멍이 있거나, 달리 감안할 점들이 발견된다. 그 일례가 국제 현안 개입을 기피하는 것을 미국 쇠퇴의 단면으로 연결 짓는 것이다. 일면 타당해 보이지만 지금 미국에서 이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논리와 동일하다. 미국 외교정책에서 국제사회에 개입을 요구하고, 이를 미국의 힘과 연결시키는 쪽은 보수 매파로 불리는 네오콘이다. 그 반대편에 국제사회 철수를 주장하는 고립주의가 있고, 말로는 개입하면서 행동하지 않는 버락 오바마식 실리정책인 '외교적 긴축'도 있다. 미국 쇠퇴론이 매력적인 정치구호이고, 오바마 대통령을 비판하는 연장선에 있는 점도 인 점도 주의할 대목이다. 역대 존 F 케네디, 리처드 닉슨,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등은 위기론으로 재미 본 대표적인 대통령에 꼽힌다. 미국의 쇠퇴론을 일반화하려면 그 배경을 잘 살펴야 할 것 같다.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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