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서는 '병 고치는 것' 과 '병 치료하는 것'을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지만, 영어에서 고친다는 뜻의 'fix'와 치료한다는 'treat'는 매우 쓰임새가 다른 말이다. 즉 고장 난 기계를 고치는 것과 살아있는 생물의 건강을 되찾게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직면한 환경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 두 가지 상충되는 관점이 자주 충돌한다. 기후변화도 이런 문제 중 하나다. 기후변화가 부정할 수 없는 과학적 사실로 굳어지면서, 이제 관심사는 과연 기후변화를 되돌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기후를 정상 상태로 되돌리려는 방안들의 하나로 '지구공학'(Geoengineering)이라는 연구 분야가 있다. 이 방법은 두 가지로 대별되는데 하나는 태양에서 들어오는 햇볕을 줄이기 위해서 하늘에 큰 반사경을 설치하거나 구름의 양이 증가하도록 에어로졸을 하늘에 살포하는 방법이다. 또 다른 연구 방향은 해양과 육상의 광합성을 증가시켜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방법이다. 이런 공학적인 방법에 대한 비판과 우려도 만만치가 않다. 지구의 복잡한 순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부 지역의 햇빛을 차단하면 다른 지역의 가뭄이나 홍수를 일으킬 수 있고, 대기 중에 뿌린 에어로졸은 산성비로 내려와 다른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 해양에 플랑크톤을 과량 번식 시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려는 기술은 바다 바닥 생태계를 파괴시킬 우려가 있어, 이미 연구 중단이 선언된 상태이다. 이런 논란의 기저에는 지구를 하나의 기계로 보고 이를 '고치려는' 사고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비해 지구 전체를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생각하여 지구의 생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병을 고치듯이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임스 러브록의 에 소개된 '지구생리학'(Geophysiology)이 이런 사고를 잘 대변한다. 이런 철학적 주장이 공허하고 너무 사변적이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지구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면 질수록, 개별적이고 단기적인 공학 기술로는 복잡한 기후변화를 다스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남아메리카 아마존 숲의 대규모 벌목으로 인해 미국 서부의 가뭄이 심화되었다거나, 북극 온난화가 오히려 일부 온대 지방의 겨울 기온을 낮출 수 있다는 등 이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현상들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지구적 문제와 무관치 않다. 중국에서 유래한 대기 오염물질이 우리나라 토양과 산림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매립한 새만금 때문에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철새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다. 지구의 환경 문제는 한 두 지역의 국한된 이슈가 아니라 많은 것들이 전지구에 걸쳐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는 고혈압에 걸린 환자가 병을 이겨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당연히 혈압을 낮추는 약을 먹어야 하지만 동시에 금연과 절주, 적절한 운동이 없으면 '병을 고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기후변화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을 막고 이를 되돌리려면 공학적인 해결책도 시급하지만 이것은 다른 생태계를 교란하거나 환경적인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육상과 습지의 생태계가 광합성을 통해서 붙잡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극대화 하고 동시에 분해되어 대기로 돌아가는 양을 최소화 하는 기술도 연구가 더욱 필요한 부분이다. 현재 북극ㆍ고위도 습지ㆍ열대 우림 등에 식물의 광합성을 통해서 붙잡혀 있는 탄소가 분해되지 않도록 안정화 하는 기술, 혹은 바이오차르라고 부르는 숯의 상태로 작물이나 목재 부산물을 저장하려는 기술 등이 부작용이 적은 지구공학기술의 예다. 내가 기후변화 관련 연구를 한다고 소개를 하면 미국 친구들에게서 당장 듣는 질문은 '고칠 수 있는가'(Can you fix it)이다. 내 대답은 이러하다. '치료는 할 수 있다'(We can treat it).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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