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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월요일 11일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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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월요일 11일자] 판사

입력
2013.11.10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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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적인 집권자가 마치 정당한 법에 의거한 행동인 것처럼 형식을 취해 입법기관을 강요하거나 국민의 의사에 따르는 것처럼 조작하는 수법은 민주 법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를 억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사법부의 독립 뿐이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임시수도 부산에서 계엄령을 선포하고 경찰과 군대가 국회를 포위한 가운데 발췌개헌안을 통과시킨 부산정치파동 후 가인(街人)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대법관들에게 했던 얘기다.

▦ 그는 사법부마저 장악하려는 이승만 대통령에 굴하지 않았다. 자신을 암살하려던 장교를 사살한 서민호 의원에 대해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리자 이 대통령은 격분했다. 이에 가인은 “대법원장도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상소하라”고 잘라 말했다. 을사늑약 체결 때 항일 의병에 참여했고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가 무료변론을 도맡았던 의로움, 영하5도 이하가 아니면 법원의 난방을 허락하지 않아 잉크병이 얼었던 청렴함이 독재권력에 당당할 수 있었던 바탕이었다.

▦ 대공항 시기인 1930년 피오렐로 라과디아 뉴욕 치안판사는 굶주림에 빵을 훔친 노인에게 10달러 벌금형을 내렸다. 온정을 기대했던 법정은 술렁였다. 그는 논고를 이어갔다. “곤궁한 노인을 돕지 않은 우리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래서 나에게 벌금 10달러를, 방청객 모두에게 50센트를 선고한다”고 했다. 이렇게 걷은 57달러50센트를 노인에 주었다. 그는 훗날 뉴욕시장을 3연임했고 시민들은 맨하튼 인근 공항을 ‘라과디아’로 불러 존경을 표했다.

▦ 요즘 판사들이 화제다. 판결이 나오면 보수 진보할 것 없이 비난과 조롱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집권당 당직자들이 판결 전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듯한 발언들을 쏟아낸다. 3권 분립이나 사법부 독립은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일 뿐이다. 참으로 품격 없는 사회이고 저급한 정치문화다. 그러나 그들만을 비난할 수 없다. 많은 판사들이 막말, 외부 유착, 이념 편향으로 스스로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우리에게 가인이나 라과디아 같은 판사는 정녕 없는 것인가.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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