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이 재빨리 심폐소생술(CPR)을 하지 않았다면 제 심장은 영원히 멎었을 겁니다. 새 삶을 살게 해줘 고맙습니다." 8일 서울 신내2동 중랑소방서 2층 회의장에서 유연상(57)씨는 생명의 은인을 보며 이같이 말했다.
유씨는 올해 1월15일 오후 서울 묵동의 한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치다 잠깐 쉬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코트에서 심판을 보던 최광엽(52)씨는 바로 달려가 유씨의 목에 손가락을 대고 심장이 멎은 걸 확인, 구급차가 오기까지 8분간 유씨의 가슴팍을 눌렀다. 다행히 최씨는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안전강사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어 CPR에는 매우 능숙했다. 유씨는 "후유증도 전혀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생사의 갈림길에서 주위 사람의 CPR이나 자동제세동기 사용으로 위기를 넘긴 구조 수혜자와 가족, 이들을 구한 은인과 소방 관계자 등 20여명이 이날 한자리에 모였다. 소방의 날(11월 9일) 51주년을 맞아 중랑소방서가 '119를 빛나게 해주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마련한 자리였다.
유씨에 이어 다른 수혜자들도 잇따라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했다. 7월 말 서울 중화동의 한 건물 계단에서 쓰러진 뒤 5일 만에 의식을 되찾은 손주일(42)씨는 "소방대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참석한 소방, 의료 관계자들은 이름 모를 한 시민의 공으로 돌렸다. 박근홍 서울의료원 응급의학과장은 "구급차가 올 때까지 CPR을 하다 현장을 떠난 그 시민이 기적을 일군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대원 중에서는 신내119안전센터 한진국 소방위가 박수를 받았다. 그는 3월 신내동 한 체육관에서 운동하다 심정지로 쓰러진 주낙열(67)씨를 CPR로 살려냈다. 동료들은 "구급대원도 아닌 화재진압대원이 휴무일에 운동하다 뜻 깊은 일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수혜자들은 자신들도 타인의 생명을 살려보고 싶다며 응급처치법을 배우는 데 열을 올렸다. 1시간 여 CPR과 자동제세동기 사용법 등을 배운 이들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유씨는 CPR 연습용 마네킹을 꾹꾹 누르며 "언젠가 위기의 순간에 처한 누군가를 살리는 '4분의 기적'을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10여년간 17명의 생명을 되살려 별명이 '하트 세이버(Heart saver)'인 김영관 구급대원은 "심장이 멎은 지 4분이 지나면 뇌에 산소공급이 안 돼 치명적인 뇌 손상을 유발, 신체 마비 등 각종 후유증을 남기거나 사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랑소방서는 이날 소방서 안에 '심폐소생술 열린 체험장' 문을 열었다. 체험장은 연중 무휴 24시간 운영되며 CPR을 배우고 싶은 사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소방서 관계자는 "최근 들어 CPR 등 응급조치법을 배운 국민들이 많이 늘었지만 더 널리 알려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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