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중편소설 '화라지송침'은 한 개인의 윤리가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도덕과 관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복합적인 탐구를 담고 있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연대감"과 "일종의 선의"를 지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양심적인 인간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소설은 아내와 장인의 말 할 수 없는 비밀을 궁금해하던 주인공이 어느새 자기 자신도 그 어둡고 잔인한 공모의 일부임을 깨닫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나간다. '화라지송침'으로 상징되는 한때의 부유한 시절을 뒤로 한 채 아버지를 잃고 양돈 축사의 노예로 비참하게 살아온 한 인간의 생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괴로운 마음은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로 어느새 전이되어 온다. 타인의 고통을 방치하고 그것에 무감각해진 우리 속의 괴물들을 흔들어대는 이 소설은 문학이 질문할 수 있는 공동체의 윤리를 가장 소설적인 방식으로 성찰한 인상적인 작품이다.
한국일보문학상 예심위원 백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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