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세계 경제는 혼돈 속을 더듬는 듯하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것은 여전히 G7이지만, 브릭스(BRICs)가 인구에 회자된 뒤 G20이 등장하고 이제 시베츠(CIVETSㆍ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이집트 터키 남아공)가 입에 오르내리는 상황은 구체제가 무언가 전환점에 서 있다는 분명한 방증이다.
인도 출신의 미국 경영 컨설턴트인 램 차란은 세계 경제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세계적인 기업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전히 글로벌 거대기업으로 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차란은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자신이 북위 31도 아래 국가로 뭉뚱그린 '남반구'로 서서히 이동해 갈 것이라고 단언한다. 변동성이 강한 금융시장의 전 지구적인 확대, 디지털 기술의 발달, 신흥국들의 중산층 확대, 자원 쟁탈전 등을 간명하게 분석한 뒤 그는 이 모든 흐름을 감안할 때 현재의 값싼 노동력에 기반한 비교 우위가 축소된 이후에도 부상하는 '남반구' 기업들이 우위를 갖게 될 것이라고 봤다. '전혀 새로운 게임의 시대'에 과감한 리더십과 전략적 판단, 시장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 복수의 정부와 규제자들 및 잠재적 파트너들과의 관계 형성에서 떠오르는 '남반구' 기업이 월등히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남반구' 기업의 전형으로 꼽는 것은 마치 개발독재 시절 현대나 삼성의 성장을 연상케 하는 인도의 거대 인프라 기업 GMR 그룹이다. 그들은 아무런 경험 없이 시작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진입을 원하는 시장을 선택하고 그 시장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기르고 있다. 큰 전략적 도박을 하고 빠른 속도로 사업체를 세워 직접 혹은 지주회사를 통해 전 세계에 100개 이상의 사업체를 소유했다.
비슷한 사례로 책에서는 세계적인 알루미늄 생산기업이 된 인도의 힌달코, 세계 최대 양조회사가 된 브라질의 에이비 인베브, 세계적인 가전업체로 발돋움 하는 중국의 하이얼 그룹, 인도에서 시작해 서남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통신회사 바르티 에어텔 등을 거론하고 있다.
'북반구' 기업에 대한 컨설팅을 본업으로 삼아온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다. 지금까지 세계 경제를 주도했던 '북반구'의 기업은 중국이나 인도, 브라질의 기업이 자신들이 했던 길을 따라오는 것을 백미러로 보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앞서 가기만 하면 된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가 거듭 말하듯 지금은 전혀 새로운 게임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거대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남반구'라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의사결정 권한이 자금과 함께 남반구로 이동해야 하며 어느 곳보다 고위급의 간부를 파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론적인 조언보다 훨씬 명징한 것은 그런 흐름을 읽고 변하고 있는 '북반구' 기업들의 사례다. 기술과 노하우를 뺏길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히 중국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GE, 중국시장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정확한 전략으로 합병함으로써 더 큰 성장 기회를 얻은 보레알리스, 시장 진출 방법이나 인재관리, 기술 플랫폼 등 회사의 체질과 구조를 남반구에 맞게 개조해 성장 기반을 구축한 3M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전 세계 CEO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컨설턴트'라는 저자에 쏟아지는 찬사보다 더 이 책을 신뢰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미래 진단이 정확하고도 알기 쉬운 분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짧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자료를 찾으려다 결국 못 찾아 직접 썼다는 7쪽 분량의 분석은 명쾌하기 이를 데 없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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