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성장의 허상이 부른 자원 고갈·양극화 경고소비 줄이고 분배 실천한 유토피아 공동체 11곳 소개
성장 지상주의는 과연 대다수 지구인에게 행복을 이뤄줄 길일까. 백화점의 모든 물건을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욕망은 사라질까.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부의 불균형과 소비의 폭증, 그리고 이에 따르는 환경파괴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도려내기 전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일까. '무한 성장'을 추구하는 우리의 삶이 '충분한 성장'에 멈출 수 있다면 지구가 바닥나는 상황을 피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행복을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물음으로 시작되는 현대 '유토피아'의 실현 의문에 대해 답을 제시하는 책이 잇달아 출간됐다. 충분한 소비, 그리고 충분한 성장만으로 유토피아에 근접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이들 책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의 허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지금, 적지 않은 설득력을 갖는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70억 인구가 사는 지구, 이 가운데 27억명은 하루 2달러 이하로 연명하는 현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394ppm에 도달해 기후가 위협받는 오늘. 그리고 2%의 성인이 전세계 가계자산의 절반 이상을 소유한 불평등. 저자는 지구의 자원이 이처럼 일부에 편중되는 상황이 전체 삶의 질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데 대해 정통경제학은 아무런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잘 살기 위해선 "케이크를 잘 자르는 방법을 찾는 것보다 케이크 크기를 키우면 된다"고 믿는 성장위주의 경제학은 이제 의미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현대 우리 사회는 겉보기엔 국내총생산(GDP)이 치솟고 무역량이 증가해 날로 번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수는 줄어든다. 성장의 원동력이라 여겨지는 소비지상주의는 미 오리건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8%가 '적게 소비하면 미국이 더 잘 수 있다'고 밝혔듯이 아무도 믿지 않는 원시종교처럼 버려지고 있다.
저자는'더 많이'의 광기에 사로잡힌 경제의 목표를 '충분'의 윤리로 바꾸는 구체적이며 설득력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책은 유한한 지구의 자원량이 이미 지속적인 경제 성장추세를 뒷받침할 수위 아래로 내려갔다고 지적하며 강제적이지 않은 수단으로 인구를 안정화하고 소비를 조절하는 시스템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끝없는 소득 증가를 가져오면서도 생태적 한계를 초과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탈동조화 성장'의 중요성을 말한다. 현대적 의미의 유토피아는 이러한 반소비, 친생태적인 구조 정비를 통해 도달할 수 있다는 게 요지다.
나우토피아
자원소비와 인구를 안정적인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되도록 많은 이들이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사회는 정상상태경제가 작동하는 사회라 부른다. 자원을 바닥내지 않으면서 올바른 분배를 이루며 삶을 영위하는 이 같은 공간은 토머스 모어가 그렸던 유토피아의 모습과 가장 현실적으로 닮았다고 할 만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2007년 세계금융위기가 시작되자 과연 지구상에 극단을 향해 치닫는 성장위주 자본주의의 그림자를 벗어나 살 수 있는 공동체가 존재하는지 직접 찾아 나선다. 이들은 성장과 소비를 뒤로한 채 분배와 행복에 집중한 11개 커뮤니티를 1년 동안 찾아내고 방문한 기록을 남겼다. 는 현대적 유토피아라 부를 수 있는 이들 공동체를 경험한 저자들의 여행기다.
책에 소개되는 공동체들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지향하는 '소비천국'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소비천국은 끝없는 불만족을 양산하고 부러움을 만들어내 불필요한 소비를 이끌어내며, 이를 통해 성장을 추구하는 고리를 순환한다. 이 과정에서 따라오는 중독, 우울증, 정신질환 등의 부작용들도 심각하다. 저자들은 21세기시민불복종캠프가 진행된 영국 히스로공항, 소비를 부추기는 미디어의 소음에서 자유로운 영국의 랜드매터스 공동체, 무정부주의 아래 적극적인 자율을 가르치는 스페인 파이데이아 대안학교 등에서 '소비천국'과 반하는 천국들을 발견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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