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장편소설 에 나타난 노근리 학살 사건의 끔찍한 비극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형성되는 문학적 리얼리티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일깨운다. 이 소설이 다루는 보고와 증언의 서사는 근래 장편소설들을 잠식한 일상세태담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진지한 의욕을 드러낸다. 물론 소설을 읽다보면 동학혁명과 조선 왕조, 그리고 전쟁과 분단에서 현재까지 아우르는 이 서사의 가파른 도정이 다소 숨가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출생 기원과 가문의 삶을 한 시대의 공통적 체험에 접맥하려는 작가의 시도는 다양한 풍속 묘사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소설적인 진전을 이루고 있다. 좋은 이야기꾼은 한 시대가 남기는 절실한 증언들을 놓치지 않는다. 이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그 증언에 대한 곡진하고 섬세한 작가의 시선 때문이다.
한국일보문학상 예심위원 백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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