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이란 것은 확실히 전파되고 감염되는 것 같다. 일을 하다 보면, 마땅히 얼굴을 보고 말해야 하는 경우도 메신저나 문자 메시지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효율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권장이 되는 것과는 무관하게, 맞대면하고 말할 기회가 박탈되면 박탈될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이물감이 끼어든다. 나는 그것이 쇠에 스는 녹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멀리 있는 지인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예컨대 그가 생일을 맞았거나 승진을 했다거나 취직을 했을 때 문자로 축하 메시지를 남기는 게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안 좋은 일을 겪은 이에게 위로를 전해야 하는 경우나 실수나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전화나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많은 이들, 특히 젊은층에서는 이런 경우마저 문자 메시지나 메신저의 이용을 선호하는 것을 보게 된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소통이란 과연 무엇일까. 얼굴을 보지 않고 자신의 의도나 의견만 전달하면 되는 것이 소통이라고 생각하지나 않을까 염려스럽기까지 하다. 소통은 사실,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상대방의 태도를 견디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것이 편리함만 널리 권장되는 상황에서는 자리를 잡기 어려울 것 같다.
소설가 김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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