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건설업체 A사는 2010년 경기 의왕시에서 준공한 아파트 단지에 15m짜리 소나무를 심었다. 더 큰 걸 심고 싶었지만 차량으로 운반할 수 있는 크기가 그 정도였다. 산에서 바로 채취해 구입비용은 500만원이었지만 운반비와 작업비만 200만원이나 들었다. 조경비용 35억원 중 소나무에 투입된 돈만 10억원. 최대한 화려하고 커다란 나무를 심어 외부인들이 샘을 내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
건설업체 B사는 올해 4월 준공한 아파트 단지에 40㎡ 규모의 유리온실을 도입했다. 주민들은 사계절 내내 꽃을 심고 텃밭을 가꾸며 자연스럽게 이웃이 돼갔다. 유리온실에 들어간 비용은 1억5,000만원, 소나무를 심었다면 10억원이 들었을 것이다. B사 관계자는 "소나무를 많이 심지 않았지만 유리온실이 투입비용대비 호응이 좋다"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의 조경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기존 방식이 부동산 호황에 편승해 무조건 거창하게 꾸며 투자가치를 뽐내고 치장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엔 직접 만지고 심고 가꾸는 체험형태가 대세다. 조경의 목적이 과시에서 치유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아파트 단지 조경은 기존 소나무 등 수목 중심에서 밝고 화려한 초화류(草花類)와 각종 야생화, 농사를 짓지 않고도 열매를 딸 수 있는 유실수 등으로 바뀌고 있다. 예컨대 소나무와 다른 나무의 비율은 2대 8에서 1대 9로 변했다. 해충에 약한 소나무의 특성상 앞으로도 아파트 단지에서 차츰 밀려날 처지다.
사실 꽃과 유실수 비중이 높아지는 건 건설회사 입장에서도 남는 장사다. 그루당 300만~500만원인 소나무와 달리 꽃은 주당 몇 천원에, 유실수는 30만~50만원에 살 수 있다. 더구나 나무 심을 자리를 텃밭 등으로 제공하면 주민들이 재배와 수확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어 호응도 높다.
GS건설은 지난달 준공한 '대전센트럴자이'에 132㎡ 규모의 텃밭을 처음으로 제공했다. GS건설은 4인 가구 기준으로 1.7㎡이면 연간 가족이 필요한 채소를 얻을 수 있다는 자체 조사 결과에 따라, 앞으로 짓는 아파트에 가구당 해당 면적을 텃밭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SK건설 등 다른 업체들도 차츰 텃밭과 유실수 중심으로 조경을 하고 있다. 강철현 GS건설 조경파트장은 "사회적으로 체험을 통한 치유가 확산되는 흐름에 맞춰 아파트 조경이 진화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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