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인식률 60%. 지난 4월 초 팬택의 태스크포스(TF)는 충격에 빠졌다. '세계 최초 후면 지문 인식 기능 탑재 스마트폰'을 목표로 4개월 넘게 연구개발 한 결과치곤 너무도 참담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 이세영 선임연구원은 "지문 센서를 스마트폰에 붙였을 때는 인식률이 90% 이상 나왔지만 제품모형에 지문 인식 센서를 집어 넣자 수치는 크게 낮아졌다"고 전했다.
'지문 인식률 높이기' 전쟁은 이때부터 시작했다. 영화에 보면 비밀시설 등을 드나들 때 손가락을 대면 지문을 인식하는 바로 그 기술이다. 대체 왜 스마트폰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걸까.
이 연구원은 "사람마다 손바닥에 땀이 많거나 건조하거나 성질 자체가 너무 달랐고 사무실 야외 등 환경에 따라 인식률은 천차만별 이었다. 센서를 스마트폰 뒷면에 둬야 하는 데다 집어 넣는 깊이도 1㎜ 차이로 결과는 달랐다"고 말했다. 지문인식 솔루션 개발 업체 관계자들조차 사람 손을 떠나지 않고 함부로 다루는 휴대폰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환경이라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별의별 방법이 동원됐다. 영하 20도 작은 방에도, 습식 사우나 같은 고온다습한 방에서도 직원들의 손은 지문 센서를 긁어댔다. 게다가 한 번 긁으면 센서가 지문을 '학습'하기 때문에 한 번에 50~60명 정도 참여하고 나면 다음 실험 때는 다른 '손'이 필요 했다.
그렇게 3개월 넘게 손가락과 씨름을 마치고 나서야 99% 가까운 인식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천성기 상품기획팀 대리는 "인식률을 낮추는 특이한 손과 손가락을 가진 직원들이 야속하기도 했다"며 "그러나 만족스런 결과가 나왔을 때는 1,000명 가까운 직원들 손이 고마울 따름"이었다며 웃었다. 팬택은 8월 세계 최초 후면 터치 지문 인식 스마트폰 '베가 LTE-A'를 내놓으며 시선 끌기에 성공했다.
팬택이 지문에 집착한 까닭은 '지키고 숨기고 싶은 고객들을 사로잡자'는 전략 때문이었다. 천 대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갈수록 엄청난 정보의 교류가 이뤄지고 있고 그 중심은 휴대폰"이라며 "사생활 노출과 그로 인한 피해도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나만의 공간을 두고 나만의 것을 지키고 싶은 욕구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역할을 지문을 비롯해 생체 정보 인식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고, 게다가 2007년 해외 수출용 피처폰에 지문 인식 기능을 넣었던 경험도 작용했다.
그러나 시장의 관심이 판매 성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연구팀은 부족한 소프트웨어를 보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연구 개발을 집중했고, 지난달 11일 출시한 '시크릿 노트'는 강력한 보안 관련 소프트웨어를 갖췄다.
사진, 동영상, 전화번호 등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콘텐츠를 몰래 모아 놓은 '시크릿 박스' 와 특정한 번호로부터 전화나 메시지가 오면 이름이 뜨지 않게 하는 '시크릿 전화부'가 대표적이다. 무엇을 숨겼는지 조차 숨길 수 있는 '시크릿 모드'도 있다. 게다가 이들에게 접근하려면 또 한 번 지문 인식을 거쳐야 하는 '2중 잠금'이 돼 있다.
지문인식 기술은 팬택이 강조했던 보안 관련 기술과 기능의 집합체다. 또 경영난을 타개하고 다시 비상하기 위한 '승부수'이기도 하다.
다행히 현재까지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인터넷에서 뛰어난 보안 기능 때문에 '안 보여주고 싶은 것도 보여주기 싫다는 말을 하기 어려운데 그럴 필요 없어 좋다' '애인이 안 가졌으면 좋겠다'는 다양한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출시 후 보름 동안 15만대 가까이 팔린 것으로 안다"며 "새 최고경영자(CEO) 이준우 대표가 세운 월 평균 20만대 판매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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