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지주회사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가"(공정거래위원회)
"순환출자보다 더 불리한 지주사의 규제가 더 많다"(전국경제인연합회)
한때 '재벌 지배구조의 대안'처럼 여겨졌던 지주회사 체제를 놓고 정부와 재계의 인식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대기업들이 지주사 체제를 점차 기피한다고 보고 있고, 재계는 현행 지주사 체제에 규제가 너무 많아 더 이상 흡인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6일 지난해 지주사 현황 분석자료를 내면서 대기업들의 지주회사 전환이 점차 뜸해지고, 특히 지주사 밖 계열사들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9월말 현재 국내 지주사는 전년 대비 12개 늘어난 127개. 하지만 주력사를 포함해 핵심계열사 대부분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재벌은 16개로 작년보다 1개(아모레퍼시픽) 늘어난 데 그쳤다. 전체 지주사 증가세도 둔화되고, 특히 대그룹의 지주사 전환은 급격히 약화되는 모습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를 지주사 밖에 두는 그룹들도 많다. 지주사 밖 회사일수록 내부거래 비중도 높다"며 이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발끈하고 나섰다. 지주사 전환이 둔화되고, 지주사 밖 회사가 늘어나는 건 그만큼 현행 지주사 체제에 매력이 없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지주사는 순환출자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우리나라 재벌지배구조를 보다 투명하고, 보다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부터 줄곧 독려해온 체제. 그 결과 SK LG 두산 STX 등 굵직한 재벌그룹들이 잇따라 지주사로 전환했다.
하지만 재계는 지금의 지주사는 혜택 없이 불이익이 더 크고, 오히려 순환출자에 비해 역차별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대표적 규제는 증손회사 지분규제. 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증손회사)를 설립할 경우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투자자 유치나 합작투자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SK그룹과 GS그룹은 일본기업과 손잡고 각각 1조원 규모의 파라자일렌 공장을 설립하려는 계획이 마냥 보류되어 있는 상태다. 공정거래법이 워낙 엄격하다 보니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이 규제를 풀려고 하고 있지만, 특혜논란 때문에 국회통과가 계속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순환출자를 버리고 지주회사로 가라고 해서 많은 비용을 들여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그 결과 순환출자기업은 받지 않는 규제를 지주회사만 받고 있다. 이래서야 누가 지주사로 오겠나"라고 항변했다.
현행법상 직접 지배관계에 있지 않은 계열사들은 하위계열사에 출자가 불가능 한 것 역시 역차별이다. 예를 들어 대규모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손자회사를 위해 증자를 하려 해도 직접 지배하고 있는 자회사를 제외한 다른 계열사들은 원천적으로 증자참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투자재원마련 자체가 힘든 상태다. 이 역시 순환출자에는 없는 규제다.
홍성일 전경련 금융조세팀장은 "지주사 전환시 법인세 경감 등 세제혜택이 있지만 지난해 이로 인한 과세특례는 283억원에 그쳤다. 최소 1,000억원 최대 3,000억원의 세금을 내는 대기업들에 큰 메리트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재계는 지금 같은 규제가 지속된다면 지주사로 가는 대기업은 점점 더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지주사 밖 회사를 두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유도가 정부방침이라면 그에 맞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차라리 순환출자로 남는 게 낫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