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이 9일까지 해오름극장에서 한태숙 연출로 공연하는 연극 '단테의 신곡'은 단테가 700여년 전 에 담았던 사후 세계를 무대 위에서 얼마나 사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2년여에 가까운 준비 기간, 국가 브랜드 시리즈라는 거창한 타이틀, 박정자 정동환 지현준 등 정상급 배우들의 대거 출연이 과연 높은 완성도로 이어질지 객석 주변의 시선은 날카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국내 제작진에 의해 연극으로 올려진 '단테의 신곡'은 지옥에 머무는 인간 군상과 그곳의 처참한 이미지들을 마치 중세 로마의 어느 성당 벽화 속에서 만날 것 같은 정물화처럼 그려낸다. 무대를 가득 채우는 가로 14.4m, 높이 7m 의 사다리꼴 2층 구조물은 심판자와 죄인으로 갈린 저승의 구도를 뚜렷이 보여주며 순례자 단테(지현준) 앞에 우뚝 선다. 단테는 천국으로 떠난 연인 베아트리체(정은혜)를 찾아 지옥과 연옥을 거쳐 저 높은 곳으로 향한다. 길잡이로 만난 지옥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정동환)는 "길은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된다"며 단테를 다독이고 이끈다.
단테는 지옥의 문지기들을 고루 거치며 그 아래 머리를 조아린 죄인들을 통해 죄의 본질을 자문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흉측한 나무 속에 갇힌 이들, 애욕을 참지 못해 죽임을 당한 프란체스카(박정자), 아버지를 죽이고 자식을 찌른 자들, 배고픔을 못 이겨 혈육을 뜯어먹은 사람 등 인간이 지을 수 있는 모든 죄의 나신이 부끄럽게 이어진다.
2막으로 구성한 이번 무대에서 단테의 지옥 여정은 1막 내내 1시간 30분 동안 계속된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대사는 톤이 비슷한데 무거운 원작 탓인지 귀로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 배우의 표정 연기가 보이지 않는 무대 멀리 객석에서 대사에 의존해 동조하긴 버겁다. 그보다는 카론(이시웅), 미노스(김금미) 등 국립창극단 배우들이 창과 판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저 세상 밑바닥의 슬픔과 한을 긁어내듯 절절해 풍성함을 더한다. 김학민 경희대 연극영화과 교수는 "오케스트라, 현대음악과 더불어 국악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정극의 범주를 확대했다"며 "심상을 떠올리기 어려운 고전을 음악적 요소를 활용해 구체적으로 표현했다"고 평했다.
2막은 50여분 동안 짧고 강렬하게 연옥과 천국을 그려낸다. 지옥을 상징했던 무대장치가 뒤로 돌아서며 영혼들이 천국을 향해 높은 산을 오르는 연옥이 나타난다. 연옥을 지나 마침내 천국에 도착한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순간, 국악은 사라지고 두 배우는 뮤지컬을 떠올리게 하는 현대적인 노래들을 부른다. 지옥은 국악으로 묘사하고 이에 대비되는 화려한 천국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노래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높였다.
전체적으로 읽기 어려운 고전을 보기 좋게 연극으로 묶어낸 연출의 솜씨가 빛난다. 음악의 다양성과 더불어 강렬한 광선으로 지옥의 절망을 표현한 조명도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이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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