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들어서며 조망·일조량 제한사무실·갤러리로 전용할 수 있게 설계급변하는 환경에 대응 위한 단독주택기둥 위에 2층 주택 세워 조망 확보흰색 벽, 햇볕 드는 위치마다 뚫려"거주의 기능이 집 밖으로 나간 시대도시 풍경에 대한 일관된 언어 가져야"
2011년 방배동 주택가 한복판에 백색 상자를 내려놓은 듯한 집이 들어섰다. 원래 있던 단독주택을 허물고 지어진 이 집은 주변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데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주력한 모습이다. 2층짜리 주택은 조망을 확보하기 위해 기둥에 받들려 3층 높이로 올라 갔고, 흰색 화강석으로 단단하게 둘러친 벽은 햇볕이 드는 위치마다 전략적이고 조형적으로 뚫려 있다. 마치 오염된 강에서 숨을 쉬기 위해 올라온 물고기 같은 집이다.
건축가 조남호(51ㆍ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설계한 이 집은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정한 '2013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에 단독주택으로는 유일하게 꼽혔다. 최근 2년 내 준공된 건축물 가운데 오늘날 한국의 사회상을 독창적인 언어로 반영한 작품에 주는 상이다. '방배동 집'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화려하지 않으면서 치밀한 디자인, 대지를 차지하는 방식, 길을 향한 표정 등이 모두 설득력이 있다" "우리나라의 정서와 사회적 맥락에서 개인주택에 중요한 상을 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고무적"이라는 평을 내놨다.
아파트의 난립 속에서 질세라 솟아오른 방배동 집의 표정은 전투적으로 보이다가도 점잖게 수비에 그친 듯한 모습이기도 하다. 조남호 건축가를 만나 급변하는 주거 환경 속에서 단독주택이 취할 수 있는 대처법에 대해 들었다.
-방배동 집을 지을 때 건축주의 요구는 무엇이었나
"건축주는 60대 후반의 전직 축구선수 출신이다. 원래 있던 집은 그가 직접 지어 수십 년 간 산 곳이다. 멀리 남산이 한눈에 들어오던 그 집은 2006년 집 뒤쪽으로 15층 아파트 5개 동이 건립되고 우측엔 4층 빌라가 들어서면서 조망과 일조량이 모두 제한을 받게 됐다. 주거 생태가 위협 받자 주변 가정집들도 하나 둘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건축주는 소란스러워진 동네를 떠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대신 동네가 지금과 다른 모습이 될 것을 고려해 사무실이나 갤러리로 전용할 수 있는 집을 설계해달라고 요구했다. 방배동 집은 주변의 위협을 최소화하고 언제 변할지 모르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집인 셈이다."
-이 집은 완성도나 형태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마치 어쩔 수 없는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도시를 풍부하게 만드는 건 기념비적인 랜드마크나 건축가의 창의성이 발휘된 건물이 아니라, 작고 비슷비슷한 건축들이 조화를 이룬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북촌에 집을 지었다면 한옥을 지었을 것이고, 방배동 역시 주변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만 있었다면 옆 주택과 비슷하게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배동 집이 위치한 주택가는 표정이 급변하는 중이었고, 그렇다면 이 집에도 정해진 표정은 없다고 생각했다. 전형적인 주택에서 벗어난 형태는 그렇게 나왔다. 2인 가구가 거주하지만 차 4, 5대를 댈 수 있는 주차장이라든지 계단을 실내 가운데 놓지 않고 한 켠으로 몰아 놓은 것, 갤러리 같은 분위기의 창문이 그런 것이다. 내벽은 나중에 부수고 구조를 바꾸기 편하도록 핵심이 되는 벽을 빼놓고 전부 목재로 지었다.
하지만 내부는 완전히 일상의 공간이다. 손님 초대가 줄어든 노부부를 위해 거실을 한쪽으로 밀고 식당을 중앙에 배치했다. 안주인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이 식탁에서 책을 읽으며 보낼 것이다. 한 켠으로 밀려난 거실은 다용도 공간이 아니라 서재나 영상실처럼 좀 더 개성 있는 장소로 꾸며질 수 있다."
-집에 표정이 없다는 말은 과도기의 집이란 뜻인가
"해답이 아니라는 의미다. 방배동 집은 고층 아파트에 대응하는 단독주택의 해답이 아니다. 지금은 집이 가지는 과거의 개념이 약해졌기 때문에 모든 유형의 집이 가능한 시대다. 옛날엔 출생, 교육, 결혼, 사망이 모두 집에서 이뤄졌다. 거주를 담는 것이 집인데, 요즘엔 이런 거주의 기능이 집 바깥으로 나갔다. 집이 더 이상 거주를 담지 못하게 되면서 구조나 형태에도 변화가 필요해졌다. 방배동 집은 이런 상황에서 고안된 수많은 유형 중 하나일 뿐이다."
-거주의 기능이 집 바깥으로 나간 것이 주거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나
"개인적 가치 판단은 없다. 다만 루이스 칸은 '가장 좋은 도시는 거리를 걷는 아이가 자신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리라고 예상할 수 있는 도시'라고 말했다. 어린 눈에도 포착이 가능할 정도의 어떤 질서를 말하는 게 아닌가 한다. 나는 오래된 주거 지역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판교 같은 신도시의 건물들에는 건축가의 개성이 지나치게 드러나 오히려 도시의 일관된 표정을 감지할 수 없다. 어떤 이들은 건축가가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건물 하나에 대한 언어만이 아니라 도시 풍경에 대한 일관된 언어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을 듣고 다시 본 방배동 집은 급격한 환경 변화가 낳은 돌연변이 물고기로 보였다. 주변 건축물에 비해 월등한 아름다움 때문에 물고기의 진화라고 부르고 싶은 이 집은, 훗날 단독주택이 아파트 숲 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어떤 몸부림을 쳐야 했는지에 대한 기록으로 남을 듯 하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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